여름 밤
김옥순
자정 넘어 첫 시간에
달을 봤다
잠을 설친 눈처럼 불그스름하다
수박 반쪽을 모로 새운 듯한 달
보름달에서
비우는 중인지 차오르는 중인지
더듬거려진다
어스름한 이런 달밤엔
나무 그늘에서 달려오는
청랼한 곡이 있으면 딱 맞는데
매미 달밤에는 노래하지 않는다
11월 정류장
버스가 들어오니 우르르 몰려간다
멈춰진 시간을 움켜진 낙엽들이
어차피 먼길
걸어서 가도 늦지 않을 건데
차라도 타고 갈 양
떼로 달려가 부딪치고 나자빠 진다
다육이 흑기사
봄이 돼도 꽃이 없고
가을인데도 갈아입지 않는 옷
넌 꽃이니 잎이니
꽃이 아니면서 꽃같이
잎이면서 잎이 아닌 것처럼
한 번 입은 옷으로 사 계절을 버티는 너
옷 한 벌 십 년 입고도
옷 벗을 생각이 없는 사람과 같구나.
정
오누이도 아니면서 오누이처럼
이성이면서 이성이 아닌 것 같이
몇십 년을 오가는 골동품 같은
주는 자와 받는 자만 아는 묘한
실체도 없으면서 오래된 것
이것에
값을 매겨 본다면 얼마가 될까
계수가 나오긴 할까
늙은 풍차
운다
음~음
가뿐 숨 몰아
엎드려 걷는 걸음 처럼
가다 서기를 하면서
뺏골이 부딧듯
삐걱, 삐거덕거리며
서럽다, 서럽다고
속울음을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