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7)
단풍잎
― 김옥순
나
화장했습니다
점 꾹 눈썹 입술은 환하게
뚫린 자린 심벌로 두고
좀 찐하게 했습니다.
가는 길 험하여
추해지면 슬퍼질까봐
우선, 이 시를 쓴 시인은 몇 살일까,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10대 혹은 20대에는 이런 시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색씨? 화장을 하고 아름답게 보이려는 30대의 아낙?
이 시를 쓴 김옥순은 68세로 이 시는 67세이던 작년에 쓴 것이다. 놀랍지 않는가. 70이 가까운 할머니의 심성이 이렇게 이쁠 수 있다니. 그런데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시인의 영혼은 그런 것이다. 사물을 보는 예리한 시각,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바로 시인이기에 그런 것이다.
단풍잎.
가을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물이다. 그런데 시인은 단풍잎을 먼 길 떠나기 전에 화장하는 여인으로 환치시킨다. 그렇게 바꾼 것은 바로 시인의 눈에, 마음에, 상상력에 단풍잎이 화장한 여인으로 들어앉았기 때문이다. 사실 단풍잎을 화장한 여인으로 환치시키는 일은 문학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시인은 단순히 화장한 여인이 아니라 먼 길을 떠나는 여인으로 축소시키고, 그 여인의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단풍잎인 나는 화장을 했다고, 어떻게 화장을 했는지, 그리고 왜 화장을 했는지까지 밝힌다. 시인은 여인이 되고, 그것도 먼 길을 떠나는 여인이 되고 더 아름다워지기를, 아름답게 보이기를 소망하는 여인이 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완연한 여인의 목소리로, 아름답게 보이고픈 여인의 마음으로 단풍잎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는 이 시를 읽으며 단풍잎을 더욱 아름답게 느끼게 된다. 시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 김옥순 시인은 부천의 복사골문학회에서 시를 공부한 사람이다. 내 시창작 강의를 듣고 찾아와 개인적으로 습작시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는데, 70이 가까운 여인의 시상이 마치 새색씨 같다. 이 시는 내게 평을 부탁한 습작인데, 제목과 조사가 바뀌어 그녀의 시집 <날씨 흐려도 꽃은 웃는다>에 수록되었다.
[출처] 김옥순의 <단풍잎>|작성자 이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