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 묻다
- 길상호
달빛에 슬며시 깨어보니
귀뚜라미가 장판에 모로 누워 있다
저만치 따로 버려둔 뒷다리 하나,
아기 고양이 산문이 운문이는
처음 저질러놓은 죽음에 코를 대고
킁킁킁 계절의 비린내를 맡는 중이다
그늘이 많은 집,
울기 좋은 그늘을 찾아 들어선 곳에서
귀뚜라미는 먼지와 뒤엉켜
더듬이에 남은 후회를 마저 끝냈을까
낱개 현에 미처 꺼내지 못한 울음소리가
진물처럼 노랗게 배어나올 때
고양이들은 죽음이 그새 식상해졌는지
소리 없이 밥그릇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나는 식은 귀뚜라미를 주워
하현달 눈꺼풀 사이에 묻어주고는
그늘로 덧칠해놓은 창을 닫았다
성급히 들어오려다 창틀에 낀 바람은
다행히 부러질 관절이 없었다
길상호의 시 <그늘에 묻다> 속 이야기는 간단하다. 즉,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방으로 들어온 귀뚜라미를 죽였는데 그 귀뚜라미를 방 밖 그늘에 던져버렸다는 것인데,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시인의 표현을 통해 시로 승화되어 이를 읽는 내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장판에 모로 누’운 귀뚜라미 - ‘저만치 따로 버려둔 뒷다리 하나’에서 바로 고양이의 발톱에 하염없이 무너진 귀뚜라미라는 한 생명체의 허무한 죽음과 함께 약육강식 속에 쓰러지는 약한 생물의 초라한 모습이 읽힌다. 그렇게 죽은 귀뚜라미는 가을이란 ‘계절의 비린내’를 풍기고 있다. 귀뚜라미는 ‘그늘이 많은 집, / 울기 좋은 그늘을 찾아 들어선 곳에서’ ‘먼지와 뒤엉켜’ 죽어갔다. 시인은 귀뚜라미가 죽어가며 ‘더듬이에 남은 후회를 마저 끝냈을까’라 묻지만, 울기 좋은 그늘이 바로 자신이 최후를 맞을 장소라는 사실을 귀뚜라미는 몰랐을 것이다.
고양이의 발톱에 으스러져 체액이 ‘진물처럼 노랗게 배어나올 때’ 귀뚜라미를 죽이고 냄새를 맡던 고양이는 식상해져 ‘밥그릇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약자의 죽음은 강자에게 한낱 놀이에 불과한 것이니 그럴 것이다. 시인은 ‘귀뚜라미를 주워 / 하현달 눈꺼풀 사이에 묻어’주었다고 하지만, 실은 방 밖으로 던져버린 것이리라. 고양이에게 죽어 장판에 누운 귀뚜라미를 분명 방 밖으로 던져버리는 것인데 하현달이 떠있는 날이니 ‘하현달 눈꺼풀 사이에 묻어’준다고 표현한다.
귀뚜라미를 방 밖에 던져버리고 ‘그늘로 덧칠해놓은 창을 닫’는데 ‘성급히 들어오려다 창틀에 낀 바람은 / 다행히 부러질 관절이 없었’단다. 이는 관절이 없기에 고양이도 위협이 될 수 없는 바람과의 대비를 통해 울기 좋은 그늘진 방 안이지만 고양이에게 다리가 부러져 죽는 귀뚜라미의 운명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깊어가는 가을에 읽는 길상호의 시 <그늘에 묻다>에서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쓸쓸한 죽음의 냄새, 후회와 아쉬움이 뒤섞인 삶의 성찰의 시간들’이 읽힌다. 새끼 고양이가 귀뚜라미를 죽인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이지만, 시인의 표현을 통하면 이렇게 일상들 속에 삶을 성찰하게 만든다. 바로 시 전편에 깔려 있는 표현 때문이다. 그 표현들이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시인의 위대함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