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고지에서 6개월 동안 외부와 차단된 채 군복무를 하고 있던 때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편지를 보내셨다. "너는 꼭 무언가 이룰 수 있는 사람이다, 너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니
잘 견딜 것이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잘 참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 오너라."
곧바로 아버지에게 답장을 드렸으나 아버지로부터 답신이 오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궁금해 가족들에게 안부를
물으면, 그 답장은 항상 '아버지 께서는 안녕하시다' 라는 소식뿐이었다.
6개월 뒤 전방 근무를 마치고 휴가를 얻어 집에 가자마자 아버지부터 찾았다. 어머니는 버선발로 반갑게 나와 내 손을 마주잡는데, 아버지는 방안에 앉아 물끄러미 보고만 계셨다. 순간적으로 '뭔가 잘못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한걸에 방으로 달려 올라가'아버지 저 왔습니다.' 라고 여쭈며 절을 드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내게 편지를 보내고 얼마 안 되어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그후유증으로 반신불수에 언어 능력을 상실해 버리셨던 것이다.
나는 간신히 눈물을 참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때 아버지가 왼손으로 뭔가를 가리켰다 그 곳에는 대학 노트가
몇 장 놓여있었다. 노트를 보는 순간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종이에는 아버지가 왼손으로 쓴 내 이름 석 자가 가득했다. 온통 내 이름뿐이었다. 그것은 내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고, 나에 대한 사랑이었고, 나에 대한 믿음 이었고, 나에 대한 기대였다.
** 두란노 아버지 학교 운돈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성묵씨의 아버지 편지에 대한 회상입니다.***
글러다니는 조그만 책자 (감동의 편지)에서 옮겨적는다 뭔가 쭈르르 넘겨보는 가운데, 왼손으로 쓴아버지의 답장, 이란 글이 눈에 띠어 읽고 새벽 3시 50분 이 시간에 옮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