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詩碑 앞에서 / 윤강로
남양주땅 하이디예술촌 촌장이
후미진 곳에 낳은 붕새알 화석 같은 돌에
나의 시 '바람 부는 날' 을 새겨 넣었다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몇 잎의 낡은 잎새로
세상에 매달려보았나"
금불꽃, 쇠무릎, 물봉선, 참취나물꽃들이
다리아프게 가는 세월 철따라 피고
장다리꽃, 메밀꽃, 박꽃, 꽈리가
시처럼 사는 뜨락이 있는 곳
앞산 소리봉에서 안개가 슬금슬금 내려오거나
수락산 능선에 달뜨거나
산발한 바람이 마른 풀더미에 뒹구는
한낮이거나
눈부시게 오로운 적막강산의 시가 된 돌이
속말로 자꾸 부서지는 풍화작용을 시작했다.
한 줄 감상
금불꽃, 쇠무릎, 물봉선, 참취나물꽃들이
다리아프게 가는 세월 철따라 피고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몇 잎의 낡은 잎새로
세상에 매달려보았나"
산발한 바람, 이 시를 옮겨적게 한다
바람 부는 날
윤강로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몇 잎의 낡은 잎새만을 보면서
오래 오래
기다려 보았나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몇 잎의 낡은 잎새로
세상에 매달려 보았나
바라보는 눈매에 추워 보았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바람이 되어 스친 것들을
잊어 보았나
삶이 소중한 만큼
삶이 고통스러운 만큼
몇 개의 마른 열매와
몇 잎의 낡은 잎새를
사랑해 보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