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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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맞는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며칠도 고민하신다는 이 분.
그런데 저는 며칠을 고민했지만, 아름다운 이 분을 꼭 맞게 소개하기 위한 어떤 단어도 찾을 수가 없네요.
시인이자 작가이신 동행의 후원자 황신애님을, 2018. 7. 11. 수요일에 동행이 만났습니다.
- (이소아 질문)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내 소개가 머 할게 있나요. 말로 하는게 어렵네요. (해사한 웃음)
제 이름은 황신애입니다.
54세, 다발성 경화증, 15년째 투병, 4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함, 그래서 살아남, 그전에 죽어 있었음.
- 그전에 글쓰기를 하신 적이 있나요?
2002년 쯤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서 나도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어요. 국문학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섬진강” 시를 통해 방통대학문학상을 받기도 했고, 그 상을 받고 4개월쯤 후에 쓰러졌어요. 일년에 두 세번 재발하다보니까 이제 거기(국문학과, 글쓰는 것)하고는 멀어졌었죠.
생각만 있지 병에 시달린다고 10년 넘게 멀어졌다가, 2014년, 세월호 사건에 충격을 받아서 생명의 존재성에 대해 생각하다가 ‘글을 써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이 있어요. 죽음에 대한 불안감.
식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책을 만들어서 마지막으로 선물을 주고 가야지. 이대로 갈 수 는 없다.’
이렇게 해서 2015년 ‘모로’-옆으로 누워서라는 뜻으로, 황신애님은 옆으로 누워서 이 책은 옆으로 누워서 편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독특하게 편집되어 있다- 라는 시집을
내게 되었고, 시집을 처음 내보니까 가속도가 붙잖아요. 시집 작업을 하려면 컴퓨터 앞에 앉아 5~6시간 작업을 해야하니까. 가속도도 붙고 재미도 붙고 (웃음).
(그래서 2017년에는 ‘파란 달팽이’시집을 내셨음.)
‘모로’를 낸 이후에 모로 말고 ‘이제는 확인을 해야겠다. 이게 과연 시 인가?’. 그래서 공모전에 시를 써서 상을 타는 것이 확인을 하는 거다,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심사위원들을 통해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었어.
장애인 문학이라는게 숭고하고 영혼이 빚어내는 독특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장애인 문학을 생각 자체를 안했다는 것이 내가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첫 번째 단추를 장애인문학상으로 하기로 하고 그 다음을 시도하자고 (생각해서 도전했는데)
너무나 행운이 있어서 장애인문학상을 타게 되고 이제 두 번째 단추를 위해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지.(웃음)
- 국문학이 어떤 점이 재미있으셨나요?
아는 분이 노인들 대상으로 사회단체를 만들건데데 거기 일을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말이 오고가면서 사회복지를 공부해놓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부터 봉사하는 것이 소망이었고 공부를 해놓으면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좋으니까. 그런데 사회복지학과 인원이 다 차버렸어.
그래서 국문학과를 지원했는데 국문학이 너무 재밌어(웃음). 시가 재미있고, 소설이 재밌고.
공고가 나왔었어요. 방송대문학상이 있는데 그걸 한번 해볼까? 저번에 섬진강을 놀러간걸 일기로 써놓은게 있어서.
그래서 그걸 가지고 시를 써서 공모를 하고 까마듯이 잊어버렸는데, 전화가 왔어 전화를 받고 팔짝팔짝 춤을 췄지. 몇 번을 뛰었어(웃음).
그렇게 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교수님이 너는 시가 아니라 소설인 것 같다. 단편소설을 한번 쓰는게 어떠냐? 저도 그런 것 같다고, 그래서 단편소설을 쓰는 과정에 딱 내가 쓰러진거야.
사실 공부를 하는 도중에도 몸이 다운되어서 왜 이러지? 왜 이러지? 했는데 단순히 갱년기가 빨리 왔나 했는데 그때가 39살이었어.
그래도 다리를 끌면서도 방통대는 출석수업만 마치면 되니까 나머지는 방송으로 들으니까. 3학년까지 듣다가 4학년 때는 도저히 상황이 안되서 휴학해놓고
그 이후 10년간은 글과 멀어졌지.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안 좋은 쪽으로.
그런데 시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 베게 밑에는 항상 책이 있었어요. 보들레르의 시가 있었고. 한편을 보면 하루가 지나가.
- (의아하고 놀라서-문학엔 잼병인 질문자) 한편을 보는데 하루씩 지나가나요?
한편을 보는데 하루가 지나가죠. 한편이 십년이 걸리죠.
병원에 가도 베게 밑에 가지고 다니고, 좋아하는 시가 두 세편이 있는데, 대학가면서 알게 되었어요.
보들레르의 ‘악의꽃’ 이라는 시집이에요. 그때 그 시집을 산게, 그게 힘이 된거 같아요. 버틸 수 있는 힘이. 아침에 한번 읽으면 하루종일 속에서 뱅뱅 돌아요.
보들레르 시 중에서 ‘취하라’는 시가 있어요.
시이든, 변호사님처럼 법이든 무엇이든 취해있어야 한다.
그런걸 생각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게 힘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보들레르 스케치를 했어요. 단순히 스케치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새길려고. 손은 굳지만 스케치를 하면서,
스케치를 하는 기능이 살아나면서 테크닉이 붙는 거야 병은 진행하지만 스케치를 할 수 있는거야.
- 그전에는 미술을 배운 적이 없으시죠?
미술을 너무 하고 싶었지.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술을 너무 많이 드시고 쓰러졌지. 간경화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 병수발을 들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고 해서 (배우진 못했어)
내가 중학교 때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선생님이 “어디서 배웠냐?” “아니요.” “신애 너는 꼭 화가가 되거라.”
그 그림이 하얀새가 달을 향해 날아가는 구상화인데, 선생님의 그 말이 너무 힘이 되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붓글씨를 잘 써가지고, 붓글씨 시간에 애들 숙제도 다 해주고 그런게 재밌고 좋았어.
사촌오빠가 화가였어요. 고모 아들이 조각가, 그니까 고흐를 닮으셨거든. 수염이 항상 있었고, 한번은 개인전을 했다고 신문을 가지고 왔더라고.
나는 사촌오빠 집 가는게 그렇게 좋았어. 말은 한마디도 못해 방해되니까 눈으로 보고 그런 게 너무 좋았어.
-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아버지가 아프고 누워계시니까. 아버지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물어보는 걸 좋아하셨던 것 같아.
할아버지가 워낙 똑똑한 분이셨는데 완도에서 지역 유지였어요. 할머니 댁이 부자였는데 잘 배운 좋은 사위 들인다고 전답이고 재산을 줘서
(당시에 많이 배웠던)할아버지랑 결혼을 시킨거야. 18살 아가씨하고 16살 미래 창창한 똑똑한 청년.
우리 할머니 말이 결혼해서 다 키우고 가르쳤더니 딴 여자한테 가버렸다고.(웃음) 아버지가 (그 할머니 할아버지의) 막내에요.
아버지가 9살 때 큰 형님이 결혼하셨대. 아버지가 형님 아이들을 업어 키우고 하셨던 것 같아. 9살 10살 11살 학교 다녀오면 아이들을 키워야했어. 아기보는 사람.
사춘기가 오면서는 분노심이 쌓였던 것 같아 교육은 유교적으로 받아서 순종하여야 하지만. 그러다가 19살에 해병대를 자원해서 갔어.
유추해보면 아버지가 해병대에 입대한건 현실에서 도피한 것 같아. 해병대를 갔는데, 아버지 성격이 할아버지처럼 강한데다 엄격한 해병대를 가니까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성격이 폭발했나봐. 그래서 술을 먹다보면 한번 씩 식구들이 견디기 힘들게 폭발하는 게 있었어. 남들에게 참 좋은 사람이고 했지만.
화를 다스리는 법을 잘 모르고 그러다가 한번 씩 폭발하는게 있었어. 그런 분노가 우리까지 이어진건데, 앞으로 우리 자식세대들한테는 없을 것 같아.
아버지가 군대를 다녀오니까 큰집 아이들이 컸잖아. 할머니 덕분에 할아버지는 재산이 많았고. 그래서 재산 싸움...
아이들의 재산을 빼앗길까봐 큰어머니가 재산을 싹 아이들 앞으로 한거지. 그리고 아버지는 흥부처럼 빈손으로 나온거야.
수필을 써보자고 생각 중에 A4 3~4장정도 자전적인 수필을 적어보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게 수필을 쓰려고 보니까 아버지를 거슬러 올라가고, 할아버지를 거슬러 올라가고, 그러다보니 너무 슬프고 그런 슬픈 역사를 보니까.
그런 것들을 글로 풀어내려고 하다보니 마음이 아프고 그렇습니다.
- 글은 앞으로도 계속 쓰실 거죠(꼭 쓰셔야 한다는 바램을 담아)?
써야죠. 글을 안쓰고 누워있으면 시간이 너무 안가요. 같이 누워있는거라도 글 쓴다고 생각하고 누워있으면 금방 지나가요.
떠오르지 않는 단어를 생각한다고 누워있으면 금방 지나가요.
- 소송의 진행이 너무 느려서, 올해 초에는 지쳐서 그만 센터에 들어가시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황신애님은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자격을 제한하는 장애인활동지원법 제5조 위헌제청결정 사건의 당사자다. 위헌제청결정은 광주지방법원에서 2017년 6월에 결정하였지만, 헌재는 아직까지 특별하게 변론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너무 침체될 때가 있어. 막 지치고. 아 이제 그만하자. 지난 겨울에도 모 재단 때문에 너무나 신경을 써가지고, 그 감정이 막 기분도 안 좋아지고, 몸도 안 좋아지고.
또 3,4월에 내 옆에 사람들이 힘든걸 보게 되었어.
그러면서 아 현실이구나. 몇 달동안 모 재단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 마주쳤던 벽, 그런걸 보니까 아 이게 내 현실이구나....
내가 글을 쓰고 하는게 내 이상, 내 꿈(일 뿐이구나).
버틴다고 해도 2~3년뿐인데 결국... 버티는 것뿐이잖아 그것 뿐일 것 같았어.
이러다 화장실도 조절이 안 될 것 같고 만약 그 정도면 요양사가 샤워도 못 시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가야하는 물건, 물체?, 마지막 가는 단계, 그 단계가 2~3년 길면 5년 후에 올껀데...
그러면 내가 더 안 좋은 모습 보이기전에 시설로 가야하지 않을까? 그때 나는 그게 이성적이라고 생각했어.
식구들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줄까봐. 그래서 시설로 가서 수동적인 나를 인정을 하고. 그냥 해주는 대로 (사는 것). 거긴 해주는 시스템이 있잖아.
그런 걸 깊이 생각했지. 내가 버틴다고 해도, 버틴다는 건 교만한 거지. 내가 뭔데 버틸 거에요. 그냥 있는 거지.
그냥 자연적으로 있는 것이고, 내가 내 힘으로 버틴다는 건 교만인거 같아. 그래서 내가 없어야해 내가 없는 시점에서 출발하는 것.
그래서 5월 말일 가려고, 장성에 있는 곳에 갈려고 했었지요. 마음도 먹고 준비도 다 했었어. 초파일 지나고 가려고 그러고 있는데
5월에 수녀님이 성모님께 올리는 글을 한번 써달라, 성모성월 행사 때 시낭독을 해달라고 하시는거야. 어떤 sign처럼.
그러면서 또 감정이 5월이 지나니까 또 아무렇지 않게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래도 수녀님이 한두번 오시면,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써놓고 읽어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맺히니까.
자꾸 감정적이 되고 해서 내가 못 할꺼 같다고 했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수필을 써볼까. 시가 아닌 에세이를 써보자. 내 이야기를 짧게 몇 편으로 써볼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수필에 빠져서, 6월부터 지금까지 수필에 빠져서 재밌게 지내고 있어요. 상을 타면 신애씨가 수필도 인정 받았구나 그렇게 축하해주세요.(웃음)
- 페이스북에 한편씩 올리는 건 생각해보지 않으셨어요?
한참 내 이야기를 다섯 편인가 올린 적이 있어요. 돌이켜 보니까 단어도 다 틀리고, 띄어쓰기도 다 틀리고 해서 다 비공개로 돌려 놨어요.
그 성모님께 올리는 수필을 쓰다보니까 그때가 너무 부끄러운 거야. 뒤죽박죽에 단어도 다 틀리고 그런게 엄청 많아요. 그래서 다 비공개로 했어요.
- 완성된 글을 올리면 되지 않을까요?
공모전에 내려고 생각하니까 거기에 매달리니 그것만 생각나서.
앉으면 오전 2시간 오후에 1시간 저녁타임으로 1시간반 꼼작없이 모조리 수필작업에 투자하니까 페이스북에 쓸 시간이 없지.(웃음)
- (무식한 질문일 수 있으나, 용기를 내서)시나 글 그림이 어떤 면에서 재밌나요?
글을 파고 있으니까 시간이 너무 아까워. 24시간이 너무 아깝고, 한 단어를 며칠 동안 생각하는 거야.
내가 원하는 단어는 이게 아닌데, 오늘도 제목을 ‘카누가 그려진 달력’ 그게 카누가 접선이라고 해야 하나.
접신? 카누가 물로 나가는 그 순간, 그 단어가 지금 한 달 동안 생각이 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그 단어가 있는데 생각이 안나.
그냥 누워 있으면 현실적인 생각에만 메어 있는데 글을 쓰면 그 단어들을 생각하는 거지. 컴퓨터로도 국어사전을 찾아보는거죠.
파고들어가서 그래도 모르면 기다리다, 기다리다 어느 순간에 나올 수 있어. 그게 재밌어 시가.
그림은 그릴 때 내가 완전히 거기에 빠져 있어요. 하루 종일.
호랑이를 그린다고 하면 눈빛을 그리는데 하루 종일, 내가 허리를 숙이고 있기는 힘들지만 하루 종일 그거에 매달려 있어요.
아무튼 단순한 그림이지만 그거 그리는데 3일에서 일주일 하루에 두어 시간씩. 재미있어요.
- (권소연 질문) ‘모로’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봤는데, 이 시인의 힘은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다고 느꼈어요.
황신애님 글 읽으면서 마음도 정화되고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제 책을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저는 그게 기분이 좋네요.
저번에 군인인가 해경 분께서 메일이 왔었는데,
‘모로’를 읽다가 단어 하나 때문에 감동받았다고 ‘그리움이 시가 되는 것이 아닌가. 네 괴로움이 시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구절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메일이 왔었어요.
그 메일 받아서 너무 힘이 되었어요.
저번에 장애인 문학상 대상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고 책상에 앉아서 내 시를 다시 읽었어요. 읽고 펑펑 울었어요.
누군가 심사위원이 내 시를 내 시각으로, 내 마음으로, 이 시를 읽었구나. 내 눈으로 봤구나. 그 마음이 너무 북받쳐 올라요. 다른 작가들도 그럴까?
누군가 내 시점, 내 초점에서 이 시를 그대로 이해했구나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그런 감정이 있더라구.
그래서 나는 내 친한 사람들에게 “내 시를 읽어 봤어?” 라고 물어봐요.(웃음)
- 어떤 수필을 쓰고 싶으세요.
‘상추쌈’이라는 수필을 써볼려고 생각했어요. 여수에서 살 때, 젓갈에 상추쌈을 싸먹는 식당에 일년에 꼭 서너번은 갔었어요.
그때 상추쌈을 사먹을 때 그게 생각나서 그거에 대해서 수필을 쓰려고 하는데,
활동보조인이 있다면, 내가 막 이렇게 줄줄줄 말을 할 때 타이핑을 해줄 수 있잖아. 그게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글을 쓰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니까 활동보조 서비스가 되었으면 좋겠어.
- (책장에 있는 책을 보면서) 인간실격 읽으셨어요?
내가 수필을 쓰려고 하니까 내가 저 작가랑 감성을 끌어내는 방법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한번 씩 보면서 참고하려고 역시 보니까 닮은 점이 있는 것 같고 그래요.
- 소설은 어떤 소설을 재밌게 읽으셨어요?
소설은 그다지... ‘태백산맥’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마지막 부분 너무 답답하고. ‘토지’는 여러번 시도를 했는데, 꼭 어떤 부분에서 막혀.(웃음)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 만화는요?
만화 많이 봤죠. 한때는 만화가도 되고 싶었는데, 공책에 만화를 쫙 그렸는데, 남자가 벼랑에 꽃을 꺽어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주는. 아마 모방일꺼예요. 그걸 내가 쫙 그려서 반 애들이 다 돌려보고 했어요.
- (이소아 질문)‘모로’에 있는 시 중에 ‘액땜’이라는 시가 있어요. “너의 액땜이라는 것이 기분이 좋아.”라고 쓰신 부분이 있는데, 그 액땜이라는 건 억울하지 않나요?
내가 이렇게 아프면서 다른 사람은 절대 아프지 말아야겠다. 내 원수라도 아프지 말아야겠다.
내 헤어진 남편이든,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아프지 말아야해. 내가 액땜을 해주는 거야. 내가 아프면서 그게 그렇게 다가오더라구.
액땜. 서로 안 맞고 그런 사이에도 액땜. 내가 방패야, 우산.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방패라면. 어느 순간엔 내가 방패인 것 같아. 내가 아파서라도 버티고 있기 때문에 애들이 스스로 철들고, 스스로 잘하고 아무튼 내가 꼭 필요한 방패인 것 같아.
괜찮아. 상관없어. 왜냐면 다른 사람들은 방패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못 버틸 것 같아. 이 통증을.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고통을 못 버틸 것 같아.
- 그 버티는 힘의 원천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사랑 , 난 사랑해. 식구도 좋아하는 사람도. 나도 모르는 내 속 안에 있는 그것. 안보이지만 그 속에 있는 건 사랑이라고 생각해.
누웠을 때 통증이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인한 통증. 남들은 그 통증을 못 버틸꺼 같아. 난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어려서부터 내가 아버지 병수발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던 것,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 폭언 폭주 같은 것이나, 어머니 빨리 돌아가시고, 그런 것들이.
내가 참으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 예방접종을 너무 많이 해가지고. 면역이 잘 된 것 같아.
-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거? 그냥... 내가 아는 사람들, 나와 가까운 사람들 마음이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질병을 비켜나갈 수는 없을꺼 같아.
그런데 마음이 평화로우면, 중심만 잘 잡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독한 것보다 더 독한 평화. 그런게 있었으면 좋겠어. 그게 간절해.
-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며칠 전에 이소아 변호사님이 생계형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었죠?
나는 생계형 작가 꿈이야. 그것이 꿈. 생계형 작가.
아직 생계가 안 되고 있으니. 글을 써서 생계를 할 수 있는, 수급자가 아닌 생계형 작가가 꿈이야.
목포를 가지고 있어야 흔들리지 않으니까.
- 마지막 질문이 있는데요. ‘황신애’에게 동행이란?
동행이란 친구. 같이 가야할 친구.
내가 힘이 없으면 나에게 힘을 줄 것이고 내가 버티고 조금 더 바뀐 모습을 보여주면 동행에 또 힘이 되지 않을까.
내가 연료 같은? 진짜 연료일 수 는 없지만 (웃음)
이상. 동행의 꺼지지 않는 핵융합발전 같은 연료인, 말그대로 아름다운, 든든한 후원자 황신애님과의 인터뷰였습니다.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145417&code=61121411&cp=nv
황신애
내 책상에는 옹이가 많다
옹이가 주인인 셈이다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저절로 손이 가는
나무의 치열恨 이야기
죽는恨이 있어도 천둥도 벼락도 살아가는 날이라며
낙엽이 쌓일수록 恨도 쌓여
그럼에도
아슬아슬恨 단단恨 재목이 되어
시인의 책상이 되기도恨
기도하는 묵주가 되기도恨
욕창을 막아주는 필사적 침대가 되기도恨
그 무중력 상처가 특별恨 멋이 되는
묵묵恨 무늬를 한없이 보다가
열이면 열 손가락 내 지문을 내려다보았다
못 마땅恨 뇌 병변 옹이인 줄만 알았다
무늬인 줄 몰랐다
‘그래, 더 돌다 가는 거다’ 돌고 도는 관성의 메아리
세상에는 옹이가 많다
옹이가 주인인 셈이다.
(사)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하고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가 주관하는 제26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심사 결과가 19일 발표됐다.
제26회 문학상 응모작은 총 299편(운문 206편, 산문 93편)이 접수돼 이 중 수상자 20명이 선정됐다.
제26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대상 수상자는 운문부 황신애 씨, 산문부 제삼열 씨로 각 부문 대상 상금 500만원을 비롯해 총 2500만 원의 상금이 수상자들에게 돌아간다.
심사를 맡은 문학평론가 허혜정 숭실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과 교수는 “장애인으로서의 삶의 체험과 곡진성, 개성적인 발상과 세련된 언어구사력, 독자에게 던져주는 울림이라는 소통적 측면을 심사의 초점으로 삼아 수상작을 추려나갔다”고 밝혔다.
시 ‘책상의 한(恨)’으로 운문부 대상 수상자 황신애(52·여)씨는 2004년 다발성경화증 확진을 받은 후 7번의 재발과 치료를 반복하다가 병이 점차 진행돼 거의 침대에서 생활하기에 이르렀지만 3년 전부터는 오전 오후로 두 시간씩 휠체어를 타고 컴퓨터 앞에서 굳지 않은 왼손으로 창작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황신애씨는 “고운 시, 신비로운 시, 사랑하는 시, 그리고 끊을 수 없는 밉고도 이쁜 시를 찾아가면서 제 모습도 찾아가고 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산문부 대상 수상자 제삼열(31)씨는 선천성 녹내장으로 인한 1급 시각장애인이다. 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교직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초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에게 동화책 한 권을 선물로 받은 그때부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며 “그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한참 지나고 보니 삶을 재밌게 살아가게 해 준 그 선생님이 무척 고맙고 그립다”며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감히 누군가를 위한 밀알이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제26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시상식은 새해 1월 5일 오후 2시 대학로 이음센터 5층에서 진행된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대표는 “25년 동안 주최해오던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미술대전 폐지를 공식화해 올 한해 고통스러웠다”며 “다행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산을 마련해줘 시행할 수 있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방 대표는 “앞으로 안정적으로 운영해서 발전을 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145417&code=61121411&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