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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호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은 (8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수호

 

이 세상이, 이 삶이

못마땅할 때도 있지만

견딜 만한 것은

바라볼 하늘이 있고

아직 맨발로 밟을 땅이 있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한 번 웃으면 잊어버릴

이웃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듣는 일이며

낮은 곳으로 향해서 흐르는 냇가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건져 올리는 일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괜찮은 곳이라고

맞장구치고 싶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믿는 일이며

그것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국어 선생이란 녀석이 말야……

아동문학가이자 우리말 연구가인 이오덕 선생께 그렇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 선생께서 과천에 있는 열세 평 아파트에 사실 때의 일이다. 내가 쓴 글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는 데에 있어서두 개의 구절을 지적하셨는데 그 어휘들은 일본어 잔재라며 그럼에도하는 데에면 충분하다는 설명이셨다. 어디서 배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로서는 그냥 자연스럽게 쓰던 말이었는데 이후로는 의식적으로 그 단어들을 기피하게 되었다. 전후세대인 나는 물론 나보다 한 참 어린 사람들도 여전히 쓰고 있는 말 - 하긴 한 번 입에 붙은 말은 웬만해서는 잘 버리지 못한다.

박수호의 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읽다가 그때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그냥 문장 속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박 시인은 시의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으니 나보다 더 크게 이오덕 선생께 혼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비록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란 뜻이다. 여기서 불구(不拘)하고란 말은 일본어 잔재인 것도 있지만 의미의 중복이기에 필요가 없다. 그냥 그럼에도하나만으로도 앞 내용에서 예상되는 결과와 다르거나 상반되는 내용이 뒤에 나타날 때 앞뒤 문장을 이어 주는 부사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시를 이야기 하는 것은 시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를 보자. 다행인 것은 대개 시의 제목으로 쓰인 단어가 시 속에 한번쯤은 나오게 마련인데 이 시에서는 제목이 내용 중에 나오지 않는다. , 내용 전체 상황을 한 마디로 묶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된다는 뜻이다. 시 속 화자는 이 세상이, 이 삶이 / 못마땅할 때도 있다고 한다. 있기만 하겠는가. 살아가면서 삶 속에 혹은 사회나 주변에 못마땅한 일이 한두 개뿐이겠는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나 겪는 어려움, 흔히 말하는 불만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간다.

왜 그럴까. ‘못마땅할 때도 있지만우리가 살아나가는 것, 견딜 만한 것은다름이 아니라 바라볼 하늘이 있기 때문이란다. 어디 그 뿐인가. ‘아직 맨발로 밟을 땅이 있고 / 누군가를 기다리며 / 그리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하늘, , 누구…… 어쩌면 추상적일 수 있지만 삶이 어려울 때 즉 삶이 못마땅할 때에 그래도 기댈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화자는 하늘이 어쩌고 땅이 어쩌고 하며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 한 번 웃으면 잊어버릴 / 이웃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듣는 일처럼 조그만 일, 어쩌면 소소한 일상들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고 말한다.

은 곳만 바라보면 불만은 더 클 것이다. 그러니 높고 높은 하늘이나 넓고 넓은 땅보다는 낮은 곳으로 향해서 흐르는 냇가에서 오히려 더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건져 올리는 일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그래도 세상은 괜찮은 곳이라고 / 맞장구치고 싶은 일이 / 벌어질것이요, 나아가 분명 세상은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것을 기다리는 일이 곧 비록 이 세상이, 이 삶이 / 못마땅할 때에 우리를 살아가게, 이겨내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런 생각들이 어떤 어려움도 견딜 만한 것이 되게 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지 않겠는가.


혹자는 이를 뭉뚱그리면 적극적인 삶의 자세혹은 긍정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사고의 전환이란 그럴 듯한 개념을 설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 속 화자는, 아니 시인은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이 세상이, 이 삶이 / 못마땅할 때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이런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내고 이겨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를 이오덕 선생이 지적한 것을 따라 우리말답게 그럼에도그러나라 말하면 어떨까. 물론 안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시의 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에는 그럼에도그러나가 전해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시인의 소박하지만 강한 의식이 담겨 있다. 단순히 문장을 이어 앞에 나오는 삶의 어려움이나 못마땅한 삶과는 다르거나 상반되는 것만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일본어 잔재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럼에도그러나만으로는 전할 수 없는, 시인이 생각하는 삶의 자세 - 소소한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아주 작은 행복, 바로 소박한 삶의 자세가 뚜렷하게 담겨 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구절, 딱 박 시인 얼굴과 그 너그러운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시. 그렇기에 이오덕 선생의 꾸지람을 기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이 시에, 사족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 한 조각을 덧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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