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묘사란 무엇인가
시의 언어는 묘사와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묘사는 가시적 세계인 이미지를 재현하여 시적 감각을 우리에게 전달하며, 진술은 시인의 음성을 통해 가청적 세계를 전달한다. 이때 묘사는 이미지를 통해 지배적인 인상을 드러내며 감각화된 세계를 보여주게 된다. 한편 진술은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청각에 기대어 들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시적 언술로서 묘사와 진술은 둘 다 중요하다. 하지만 시가 비유와 상징을 통해 시적 대상에 내재하나 기의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미지라는 기표 안에 기의를 감추게 되는 묘사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묘사는 시적 대상은 이미지화하여 하나의 시적 정황을 완성한다. 이렇게 재현된 이미지는 그 안에 시적 의미를 감추고 있기 때문에 시적 비유와 상징으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묘사는 단순히 시적 대상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묘사라는 기표이지만, 비유와 상징을 통해 기의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시적 대상을 묘사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비유와 상징이라는 시적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기도 하다.
| (묘사) |
| (미적 구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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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대상 | ………→ | 시적 이미지 | ………→ |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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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와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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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대상은 묘사를 통해 시적 이미지로 재현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적 이미지에 미적 구조를 더하게 되면 감각적인 묘사 유형의 작품이 된다. 이때 시인의 의도와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작품에 표면화되는 것은 단지 묘사된 이미지일 뿐이다. 묘사는 원관념인 시인의 의도와 의미를 감춘 채, 그것을 대체하는 보조관념으로서의 시적 이미지를 내세우게 된다. 따라서 묘사는 그 자체로 상징과 비유로 기능하게 된다. 이때 원관념인 시인의 의도와 의미는 보조관념인 시적 이미지와 매우 낯선 관계 속에 놓일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유사성을 띨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어떤 경우라도 묘사가 시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길고 느린 하품과 게으른 표정 속에 숨어 있는 눈
풀잎을 스치는 바람과 발자국을 빈틈없이 잡아내는 귀
코앞을 지나가는 먹이를 보고도 화랑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위장을 둘러싼 잠은 무거울수록 기분 좋게 출렁거린다
정글은 잠의 수면 아래 굴절되어 푸른 꿈이 되어 있다
근육과 발톱을 부드럽게 덮고 있는 털은
줄무늬 굵은 결을 따라 들판으로 넓게 뻗어 있다
푹신한 털 위에서 뒹굴며 노는 크고 작은 먹이들
넓은 잎사귀를 흔들며 넘실거리는 밀림
그러나 멀지 않아 텅 빈 위장은 졸린 눈에서 광채를 발산시
키리라
다리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하리라
느린 걸음은 잔잔한 털 속에 굵은 뼈의 움직임을 가린 채
한번에 모아야 할 힘의 짧은 위치를 가늠하리라
빠른 다리와 예민한 더둠이를 뻣뻣하고 둔하게 만들
힘을 오로지 한 순간만 필요하다
앙칼진 마지막 안간힘을 순한 먹이로 만드는 일은
무거운 몸을 한 줄 가벼운 곡선으로 만드는 동작으로 족하다
굶주린 눈초리와 발빠른 먹이들의 뽀족한 귀가
바스락거리는 풀잎마다 팽팽하게 맞닿아 있는
무더운 한낮 평화롭고 조용한 정글
―김기택, 「호랑이」 전문
「호랑이」는 묘사된 기표를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기의를 제시한다. 따라서 「호랑이」는 호랑이와 초식동물 사이에 일어나는 상황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호랑이」에 등장하는 사냥의 순간은 삶과 죽음이라는 이미지를 재현하며, 사냥이라는 기표로부터 삶과 죽음이 전달하는 기의를 호명한다. 이처럼 묘사는 묘사된 이미지를 통해 시인의 의도와 의미를 감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적 상징과 비유라는 시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있는 언술 양상이다.
시인이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죽음’을 직접 말하는 것보다 죽음이 구체적 국면을 이미지로 재현하는 것이 보다 더 시적인 언술 양상이다. 이를테면 ‘죽음은 고통스런 순간이다’라는 식의 직설적인 발화는 우리에게 별다른 감동을 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 이미지를 묘사한 경우,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을 때보다 더욱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방식의 언술 양상은 이미지가 전달하는 미적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이미지는 단순히 장면을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 지배적인 정황dominant impression을 제시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또한 시의 언어는 기존의 언어 질서를 무너뜨림으로써 새로운 감각과 상상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제시되는 언술 양상 역시 묘사이며, 그것은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제시된다. 시는 묘사를 통해 “일상적으로 보아 온 낯익은 사물에 난생 처음 본 듯 신선감”을 부여함으로써 시적 대상에 “신선감, 강렬성, 환기력” 등을 제시한다. 이렇게 제시된 감각과 상상력은 기존 언어가 제시하기 힘든 시적 사유와 감정을 전달한다. 따라서 묘사는 대상의 새로운 감각과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게 된다.
시적 언술로서의 묘사는 크게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 서사적 구조로 분류된다. 이때 서경적 구조는 가시적(사실적) 세계를 재현하는 언어 문법을 차용하게 된다. 반면 심상적 구조는 비가시적 세계를 이미지화함으로써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내용은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이다. 그리고 서경과 심상 각각의 구조에 포함된 영상조립시점을 따로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서사적 구조의 경우는 묘사의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보다 시의 서사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특성과 체계성의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따라 제외하기로 했다. 서사적 구조는 서사라는 구조의 특성상, 이미지가 강조된 묘사보다는 시의 사서적 구조 양상이나 체계성과 같은 시적 완결성과 긴밀한 관계에 놓이기 때문이다.
가시적 묘사인 서경적 구조는 사실적 묘사가 주요한 특징이다. 그런데 서경적 묘사의 경우, 전형성을 띤 장면을 포착함으로써 상투성이라는 한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시지각 안에 들어온 주변의 익숙한 장면을 손쉽게 포착한 뒤, 별다른 고민 없이 그것을 시적 국면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경적 묘사는 관찰, 수사, 시선의 새로움 등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기존의 낡은 감수성과 감각을 탈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진부함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심상적 구조는 마음으로 그리는 비가시적 이미지다.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주관적 묘사의 성격을 띠게 된다. 따라서 심상적 구조는 시인의 개성이 오롯이 드러나는 표현이기도 하다. 심상적 구조의 경우, 비가시적인 이미지라는 특징 때문에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이라는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영상조립시점은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의 하위분류이다. 그럼에도 영상조립시점을 따로 떼어 설명하는 이유는 영상조립시점을 형성하는 원리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영상조립시점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파편적 영상을 한데 모아 특별한 감감을 환기하는 창작 방법이다. 이때 영상조립시점이 제시하는 감각은 조립된 영상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영상조립시점으로 조립된 영상의 합은 새로운 감각을 창조하며 낯선 의미 구조를 형성하기도 한다.
시의 가장 중요한 언술 양상인 묘사를 파악하는 것은 시의 구성 원리를 파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심상적 구조와 영상조림시접의 구성 원리를 파악함으로써, 2000년대 이후 한국 시에 나타난 환상성과 전위적인 시적 경향은 설명 가능한 구조적 체계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시의 언술 양상과 상징체계의 난해함은 더욱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2000년대 이전에도 전위를 지향하는 다양한 방식의 작품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 나타난 전위의 양상은 이전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작품이 시인의 내면을 탐문하는 양상이 더욱 강조되었기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내면화된 언술 양상과 상징체계는 전위에 국한 되지 않고 젊은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시단 전반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심상적 구조와 영상조립시점에 대한 이해는 2000년대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시적 경향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창작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심상적 구조와 영상조립시점은 2000년대 이후의 전위적인 작품에만 적용되는 한정적인 개념이 아니다. 또한 심상적 구조와 영상조립시점은 단순하게 언어를 전위적으로만 다루는 방법 역시 아니다. 이러한 창작 방법론은 서경적 구조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시인의 내면을 제시할 수 있다거나, 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낯설게 하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심상적 구조는 가시적 이미지 이외의 모든 비가시적 표현의 구성 원리를 설명하고, 영상조립시점은 파편화되어 분절되어버린 이미지가 하나의 세계로 구축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서경적 구조 이외의 시에 드러난, 낯설게 구축되는 시적 언어와 구조에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심상적 구조와 영상조립시점이 서경적 구조보다 우위에 있는 창작 방법론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오히려 서경적 구조는 묘사의 기본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창작 방법론이다.
묘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시적 언술이다.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 그리고 영상조립시점을 통해 재현되는 묘사가 시적 수사의 정황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은 명백하다. 시를 쓴다는 행위는 하나의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제시되는 시적 세계는 이미지를 통해 구체적인 시적 정황을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진술 역시 중요한 시적 언술이다. 하지만 습작기에 있는 이들이 처음부터 시적 진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이유는 시적 진술과 직설적인 언술의 차이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진술은 감각적인 묘사와의 호응을 통해 제시될 때 시적 언술로서의 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할 여지가 많다.
묘사의 중요성과 지배적인 상황
“시는 묘사되는 것이다,”라는 파이퍼의 말이 아니더라도 시에 있어서 묘사가 중요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시적 언술이 묘사와 진술로 이어어져 있고, 묘사와 진술 모두 중요한 시적 언술이지만, 묘사된 세계를 통해 시적 감각이 극대화된다는 점에서 묘사의 중요성은 특별히 강조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묘사는 이미지로서의 대상을 관찰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이며, 시적 대상이라는 기표를 재현함으로써 그 안에 숨어 있는 기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즉, 시적 대상을 묘사한다는 것은 대상의 외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지만, 묘사의 기능은 시적 대상의 이미지를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묘사가 재현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이지만, 시적 이미지는 비유와 상징의 효과를 통해 의미를 내재화함으로써 시적 의미를 형성하게 된다. 시의 감각과 사유는 비유와 상징으로부터 비롯된다. 묘사는 시적 사유와 의미를 이미지 안에 감춤으로써, 그 자체가 비유와 상징으로 기능한다. 그런 만큼 묘사는 시를 표현하는 주요한 시적 언술 양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시적 묘사는 시적 정황으로 기능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관건이다. 아무리 좋은 묘사라고 하더라도 시적 정황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을 더 이상 시적 묘사가 될 수 없다. 일반적인 묘사와 달리 시적 정황으로 기능해야 하는데, 시적 정황은 우리의 미의식에 어떠한 자극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이와 같이, 미적 인식을 제시하는 시적 정황을 지배적인 정황dominant impression이라고 한다. 시는 지배적인 정황을 언어화할 때 의미 있는 시적 세계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시를 언어화하기 이전에 지배적인 정황을 확보해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게 된다. .
지배적인 정황은 시적 발상 단계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이는 시를 창작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지배적인 정황은 지배적인 인상을 시적 정황으로 구조화한 것을 의미한다. 이때 지배적인 정황은 단순하게 강렬하기만 한 정황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미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미적 인식으로서의 장면이다. 물론 지배적인 정황이나 인상이 묘사만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진술 역시 지배적인 정황과 같은 미적 인식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황이 이미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지배적 정황과 묘사는 특별한 관계에 놓인다. 묘사는 지배적인 정황이 됨으로써 비로소 시적 감각을 갖게 된다.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미적 감각은 우리의 미의식을 자극하며 예술적인 인상과 정황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바로 지배적인 인상과 정황이다. 모든 시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지배적인 정황이 존재한다. 지배적인 정황이 업서거나 부족할 때, 해당 작품은 시적 감각과 감흥이 약화되거나 사라지게 된다.
묘사는 특히 지배적인 정황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묘사는 이미지를 통해 인상적인 장면을 제시한다. 이때 인상적인 장면은 우리의 미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미적 강렬함과 충격을 의미한다. 이러한 미적 강렬함과 충격을 통해 미의식을 자극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바로 지배적인 정황이다. 따라서 지배적인 정황은 지배적인 인상, 미적 인식, 미의식 등과 연결되어 있는 개념이며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지배적인 정황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언어화하기 전에 구축해야 하는 시의 중요한 요소이다. 지배적인 정황이 전제되지 않은 시 언어는 한낱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할 점은, 지배적인 정황이 강렬함만을 동반하는 것이라거나 서정성과 배치된 개념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울러 지배적인 정황이 시의 모든 정황과 장르에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필수 항목이라는 점 역시 잊어서는 안된다.
묘사와 설명의 차이
묘사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설명과의 차이를 구분하는 일이다. 실제로 묘사는 시적 대상의 겉모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설명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묘사가 구체적인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는 데 반해 설명은(이미지로 착각하기 쉬운) 개괄적인 행위나 모습을 제시하고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친다. 묘사가 감각화된 장면을 통해 이미지화한 의미와 사유를 내재하는데 반해 설명은 대상의 행위와 모습만 있을 뿐 감각화된 장면이나 의미, 사유 등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설명을 통해 제시된 장면은 눈앞에 펼쳐진 단편적인 정보만 전달할 뿐 이미지의 감각과 디테일을 제시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차이를 지니고 있는 묘사와 설명은 미적 인식의 측면에서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시적 묘사가 지배적인 인상과 정황을 통해 우리의 미적 인식을 자국하는 반면, 설명은 대상의 인상적이지 않은 모습을 개괄함으로써 미적 인식을 형성하지 못한다. 따라서 행동과 모습을 개괄하여 설명한다는 것과 대상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미적 인식과 관련하여 확연한 차이를 지닐 수밖에 없다.
① 개 한 마리가 도로 위에 죽어 있다.
② 도로 위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개 한 마리, 터진 배를 펼쳐 놓고도 개의 머리는 건너려고 했던 길의 저편을 향하고 있다.
‘로드킬 당한 개’라는 상황을 표현한 두 분장은 같은 장면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것이 전달하는 감각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①번 문장의 경우, 개가 죽어 있는 상황을 단순하게 제시하며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반면, ②번 문장은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감각화된 개의 죽음을 생생하게 펼쳐 놓는다. 또한 ①번과 ②번 문장의 또 다른 차이는 두 정황이 제시하는 미적 인식에 있다. ①번 문장은 개가 죽어 있다는 단편적인 정보만을 전달할 뿐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미적 인식과 사유가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다. 반면에 ②번 문장은 개의 죽음이라는 정보를 단편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정황 안에 개의 죽음이 환기하는 비극적 감각과 사유를 내재시킨다. 이때 개의 죽음은 보다 선명하게 우리의 미의식 안으로 잠입하게 된다. 이 문장에서 “납작하게 누워” 있다는 표현은 개가 죽어 있는 모습을 단순하게 보여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개의 배가 터져 있다거나, 개의 머리가 “건너려고 했던 길의 저편을 향하고 있다”는 묘사 역시 개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묘사는 개의 죽음이 환기하는 미적 인식을 제시하며 시적 사유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① 한 남자가 앉아 있다.
②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아, 남자는 오후의 햇살을 느리게 더듬고 있다.
위의 두 문장 역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분장은 남자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점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①번 문장에서 남자의 내면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남자가 앉아 있는 장면만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장은 대상의 표면적인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②번 문장의 경우는 남자의 내면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남자를 둘러싼 느낌까지 확연하게 전달된다. 남자가 앉아 있는 의자의 이미지는 남자의 내면으로 치환되고, 오후의 햇살을 “느리게” 더듬고 있는 남자의 행동 역시 남자의 내면을 적확하게 재시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우 외에도 설명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때가 있다.
설명적 문장이 되는 또 다른 경우는 인과간계이거나, 부연하여 설명하려는 인과적 특성이 나타날 때이다. 인과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문장은 일반적으로 부연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때 부연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문장은 원인과 결과의 양상으로 인해 설명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과관계의 문장은 아니지만, 인과적 특성이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설명적 표현이 되는 사례도 많다. 이 경우 역시 부연하려는 문장의 특성 때문에 설명적이 되는 것이다. 즉, 묘사해야 하는 대상 자체에 집중하는 글쓰기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부연하여 다시 한 번 설명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과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문장이나 부연이 언제나 비묘사적인 것은 아니다. 인과적 특성을 보이는 문장 역시 좋은 묘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시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인과적 특성이 드러나는 문장을 씀으로써 작품이 산문투의 부연 설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인과적 특성의 문장은 글을 설명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시적 긴장감과 감각을 매끄럽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① 오빠와 언니는 가난했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다.
② 허겁지겁 밥을 먹던 오빠도, 밥 먹을 힘조차 없다던 언니도, 이제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인과간계는 ①번 문장에서처럼 ‘~했기 때문에 ~하다’와 같이 원인과 결과가 명백한 경우에 나타난다. 이때 뒤의 문장이 전달하는 결과가 앞의 원인을 전제로 하여 부연하기 때문에 문장 전체가 설명적이 된다. 결과에 해당하는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서 원인을 제시하는 방식의 언술 양식은 대상의 이미지를 직접적이고 명백히 제시하는 묘사와 차이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처럼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아닌 경우에도 인과관계와 같은 부연 설명의 문장 구조가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②번 문장과 같은, ‘~도’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때 ‘~도’를 중심으로 문장은 앞과 뒤로 나뉘게 된다. 이 문장이 명확히 인과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과적 특성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도“의 앞 문장은 원인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고, 뒤의 문장은 결과의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이 문장은 인과관계가 명확화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인과관계에서와 같이 설명적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
묘사와 진술의 어울림
앞에서도 언급했듯 시적 언술은 묘사와 진술로 나뉜다. 이때 시적 언술은 묘사만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진술만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묘사만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는 묘사와 진술이 어루어며 유기적인 세계를 형성한다. 묘사와 진술은 그런 점에서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한다. 즉 묘사 중심의 시에 진술이 개임함으로써 시적 사유가 확장되기도 하고, 진술 중심의 시에 묘사가 개입함으로써 진술이 감각적으로 이미지화하기도 한다. 아울러 묘사형의 문장에 의미중심적인 시어를 결합킴으로써 묘사가 곧 의미를 내재할 수 있게도 할 수 있다.
길고 느린 하품과 게으른 표정 속에 숨어 있는 눈
풀잎을 스치는 바람과 발자국을 빈틈없이 잡아내는 귀
코앞을 지나가는 먹이를 보고도 호랑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위장을 둘러싼 잠은 무거울수록 기분 좋게 출렁거린다
정글은 잠의 수면 아래 굴절되어 푸른 꿈이 되어 있다
근육과 발톱을 부드럽게 덮고 있는 털은
줄무늬 굵은 결을 따라 들판으로 넓게 뻗어 있다
푹신한 털 위에서 뒹굴며 노는 크고 작은 먹이들
넓은 잎사귀를 흔들며 넘실거리는 밀림
그러나 멀지 않아 텅 빈 위장은 졸린 눈에서 광채를 발산시키리라
다리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하리라
느린 걸음은 잔잔한 털 속에 굵은 뼈의 움직임을 가린 채
한번에 모아야 할 힘의 짧은 위치를 가늠하리라
빠른 다리와 예민한 더듬이를 뻣뻣하고 둔하게 만들
힘은 오로지 한 순간만 필요하다
앙칼진 마지막 안간힘을 순한 먹이로 만드는 일은
무거운 몸을 한 줄 가벼운 곡선으로 만드는 동작으로 족하다
굶주린 눈초리와 발 빠른 먹이들의 뾰족한 귀가
바스락거리는 풀잎마다 팽팽하게 맞닿아 있는
무더운 한낮 평화롭고 조용한 정글
―김기택, 「호랑이」 전문
「호랑이」는 묘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장점은 진술과의 조화를 통해 시적 사유의 깊이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 있어서, 의미중심적인 시어를 통해 묘사 자체가 의미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이를테면 초식동물을 “빠른 다리와 예민한 더듬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묘사와 함께 시적 의미를 형성하도록 했다. 이때 ‘다리’와 ‘더듬이’라는 대상은 각각 “빠른”과 “예민한”이라는 의미중심적인 시어를 통해 시적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
또한 초식동물이 죽음에 이른 순간을 “앙칼진 마지막 안간힘”으로 표현한다거나, 사냥의 순간을 “무거운 몸을 한 줄 가벼운 곳선으로 만드는 동작으로 족하다”라고 말함으로써 묘사와 진술의 접점을 획득한다. 아울러 “앙칼진 마지막 안간힘”과 같은, 이미지화한 진술을 통해 묘사의 감각과 진술의 사유를 동시에 획득하게 된다. 또한 사냥의 순간 역시 호랑이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무거운 몸”이나 “가벼운 곡선” 등과 같은 우회적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직접적인 이미지만으로 이루어진 묘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대상을 묘사할 때, 겉으로 드러난 직접적인 이미지를 중심으로 표현한 수도 있지만 의미중심적인 시어를 통해 묘사가 곧 사유를 내재할 수도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고운사 가는 길
산철쭉 만발한 벼랑 끝을
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간다
수정할 수 없는
직선이다
너무 단호하여 나를 꿰뚫었던 길
이 먼 곳까지
꼿꼿이 물러나와
물 불어 계곡 험한 날
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주고 있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
엎드려 받아주고 있다
문득, 발 밑의 격랑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이영광, 「직선 위에서 떨다」 전문
「직선 위에서 떨다」는 진술을 통해 시인의 음성을 가청화 한다. 특히 이 작품을 해석적 진술을 사용하여 시인의 시적 사유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이때 묘사적 특성을 개입시킴으로써 시인은 진술을 감각화한다. 1연을 통해 묘사적 언술 양상을 전제함으로써 이 시는 선명한 이미지를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묘사적 속성을 이후에 등장하는 진술 중심의 작품 전반에 감각적 특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직선 위에서 떨다」를 관통하는 진술은 과연 전적으로 직설적인 언술 양식일까? 이 시를 읽으며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하는 점은 진술 역시 우회적인 양식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묘사가 이미지라는 기표를 통해 그 안에 내재한 기의를 제시하는 것처럼, 진술 역시 시인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 시적 정황을 우회적으로 말하게 된다.
진술을 주된 언술 양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직선 위에서 떨다」는 삶에 대한 직설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의 진술이 사실을 ‘외나무다라’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엎드려 받아주고 있다”라는 표현은 인생에 대한 직적접인 진술이 아니다. 언뜻 보기에 이 표현은 인생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직설적 발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시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생은 ‘외나무다리’라는 표현은 인생에 대한 직접적인 진술이 아니다. 언뜻 보기에 이 표현은 인생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직설적 발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시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생은 ‘외나무다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파악한 우회적 양상으로서의 인생이다. 또한 “두려움 없는 삶도/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역시 ‘외나무다리’를 통해 나오게 된 우회적 양샹의 시적 진술이다. 이처럼 진술 역시 주체를 직접 이야기하기보다, 기표를 통해 기의를 제시하는 묘사처럼 우회적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직선 위에서 떨다」는 이와 같은 우회적 진술 어법에 더하여 감각화된 묘사적 특성을 전제함으로써 시적 진술이 전달하는 사유를 감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묘사의 시적 구조와 구성 원리
묘사와 진술은 언술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시적 구조와의 연관성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이 중에서 시적 구조와 관련한 창작 방법론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묘사이다. 진술은 시인의 내면을 가청화하여 들려주는 방식이기 때무에 언어의 구조적인 측명으로 체계화하여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반면 묘사는 감각화된 세계를 이미지화하는 가시화의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구조적인 층위에서의 창작 방법론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언술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묘사는 서경적 구조, 심상적 구조, 서사적 구조로 세분화되는데,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는 다시 고정시점, 회전시점, 이동시점, 영상조립시점으로 구분된다.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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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적 구조 |
| 서경적 고정시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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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적 회전시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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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적 이동시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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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적 영상 조립시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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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 | 심상적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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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적 고정시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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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적 회전시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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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적 이동시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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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적 영상조립시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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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적 구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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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적 구조는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는 방법론이다. 가시적 세계이므로 당연히 직접 볼 수 있는 대상을 묘사한다. 이때 가시적 세계는 지금 당장 볼 수 있는 가시권의 사물과 지금 당장 볼 수는 없지만 가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비가시권의 사물 모두를 수용한다. 서경적 구조는 시적 묘사의 구조 가운데에서 기본이 되는 중요한 방법론이다. 그러나 시적 대상은 가시적인 이미지로 파악하는 서경적 구조는 익숙한 장면을 고민 없이 표현할 때 상투성을 드러낼 위험이 있다.
심상적 구조는 비가시적인 이미지를 통해 시적 정황을 구축하는 방법론이다. 이때 비가시적인 이미지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이미지를 의미한다. 당연히 눈으로 파악하는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에 시인의 주관적 양상이 도드라지게 제시되는 방법론이다. 따라서 심상적 구조는 환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심상적 구조는 비가시적인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문장의 구조가 서경적 구조와 같은 보편적인 문법적 양상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문장의 구조와 성분이 낯선 위치에 사용될 때 비현실적이거나 환상적인 시적 정황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상적 구조는 시어의 위치를 변주하거나 구성 성분을 낯설게 적용하는 문장 구성법을 통해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서사적 구조는 시에서 이야기의 구조가 제시되는 방법론이다. 그러나 서사적 구조는 묘사라는 이미지의 측면보다 시적 서사가 만ㄹ들어내는 이야기의 구조와 체계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미지가 구축되고 해체되는 묘사의 문제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서사적 구조는 시각적 이미지의 재현을 통해 나타나는 묘사라기보다, 시적 정황의 개연성이나 시 전반의 전개 방식과 같은 구조적 체계성과 긴밀한 관계에 놓인다. 따라서 시 언어의 감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창작 방법론에 대한 논의로는 적절치 않다.
영상조립시점은 서경적 구조의 심상적 구조에 포함된 하위 개념이며, 각기 다른 파편화된 이미지를 일관된 감각으로 수용하여 하나의 시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방법론이다. 영상조립시점의 경우, 서로 어울리지 않는 낯선 정황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와 감각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각각의 영상들이 파편화되어 흩어진 감각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상조립시점은 파편화된 조각의 단순한 합이 아니다. 이때 제시된 여러 영상은 파편화된 이미지가 단편적으로 결합된 상태를 지향하지 않는다. 영상조립시점에 나타난 서로 다른 이미지는 일관된 정서와 감각 안에서 하나의 중심축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한편 영상조립시점은 제시된 영상의 일차적 감각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두 개 이상이 결합된 영상은 전혀 다른 감각으로 재탄생되어 새로운 감각을 소환하기도 한다. 즉, 제시된 영상과 전혀 다른 이미지와 감각으로 전이되기도 하는 것이다.
서경적 구조나 심상적 구조와 같은 묘사의 구조는 문장의 구조와 시적 구조라는 체계화된 층위에서 설명 가능한 것이다. 시의 구조는 단순히 시인의 감각과 사유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적 구조가 시의 전체적 구조뿐만 아니라 개별 문장과 언어의 구성 원리에 따라 미적 세계를 구축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는 단순한 수사나 표현 기법의 문제를 넘어선다. 각각의 수사와 표현 기법이 작품의 전체 구조와 의미에도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의 구성 원리를 파악하는 것은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었던 시 창작 방법론을 이해하는 것이며, 동시에 창작 원리와 관련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각각의 시점이 한 작품 안에 두 개 이상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서경적 구조 내에 고정, 회전, 이동, 영상조립시점이 혼재되어 표현될 수도 있고, 심상적 구조 내에 고정, 회전, 이동, 영상조립시점이 동시에 제시될 수도 있다. 다음은 서경적 고정시점을 기본 구조로 하여 심상적 구조를 결합한 작품이다.
여자가 떠오른 것은 저물녘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여자가 떠오른 순간 파문이 일었고, 파문을 따라 해넘이의 붉은빛이 넘실댔다.
여자가 떠오른 것은 바람이 잔잔해진 적막 속에서였다. 다시 바람이 불었고, 바람을 따라 산 그림자가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여자 등은 단호하게 하늘은 향하고 있다.
등을 돌린 채, 저수지의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바닥의, 깊은 어둠을 굽어보고 있다. 어둠을 훑는 여자의 시선을 따라
저물녘의 마지막 순간이 사라진다.
여자는 무엇을 놓고 왔는지, 하염없이
저수지의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까지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던 것인지, 여자의 시선은
처연히 어둠을 헤집고 있다. 창백한 어둠 속에 시선을 풀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쏟아지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여자의 양 팔은 저수지의 바닥을 향해 있다. 무엇을 잡으려 했는지, 무엇을 건지려 했는지.
뻗은 손의 끝은 힘없이 굽어 있고
수초처럼, 여자의 팔이 느리게 흔들렸다.
여자의 신발이 발견되었다고도 하고, 여자의 목걸이가 발견 되었다고도 했다. 저수지를 향하던 여자의 발자국을 따라 풀이 눕기도 하고 그녀의 구두가 남긴 무늬를 따라 숲의 어둠이 들어섰다고도 했다. 저물녘의 마지막 순간과 해넘이의 산 그림자가 사라지는 계절이었다.
아직, 눈을 감지 못한 것인지, 지금도 여자는
―조동범, 「저수지」, 전문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가 하나의 작품 안에 적용된 「저수지」에서처럼 묘사의 구조와 시점은 혼재되어 나타날 수 있다. 이 작품은 저수지에 떠오른 시신ㅇ르 서경적 고정시접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서경적 고정시점에 시상적 구조를 덧씌움으로써 감각과 사유가 어우러진 시적 입체감을 형성하게 된다. 죽은 자가 저수지의 깊은 어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심상적 장면은 서경적 구조만으로는 형언하기 힘든 시인의 내면을 제시한다. 이처럼 묘사의 구조와 시점은 다양하게 결합하여 복합적인 층위의 감각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동범, 『묘사』, 모악,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