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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일/김사인
게시글 본문내용

조용한 일/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시 읽기> 조용한 일/김사인

 

  김사인의 시는 자기성찰의 시학을 지향한다. 낙엽 하나를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의 존재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부단한 자기성찰과 반성을 통해서 삶의 참모습을, 세계의 현상과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그의 시에는 부끄러움과 괴로움, 죄스러움과 슬픔의 무늬결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물결치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시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진정성을 시 정신의 핵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의 시에는 과장이나 엄살 또는 위선이나 젠 체하는 모습이 없다. 대게 소외된 삶의 풍경이나 목숨의 가엾음을 미시적 상상력으로 그냥 섬세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삶의 소중함 또는 생명의 고귀함을 강조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쉽게 읽히고 독자를 아프게 느끼게 하며 은은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조용한 일’은 한 편의 시가 탄생하는 장면이 가장 자연스럽고도 솔직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이렇듯 시적인 상태는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려다 그만두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이고 또한 시적인 순간은 어떤 거대하고 장엄한 풍경에서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쓸쓸하게 비어 있는 장면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는 무엇인가 귀하고 특별한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부한 삶 속에서 터져 나온 마음의 잔해다.

사람의 기억에는 특별한 일보다, 잘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의 ‘조용한 일’들이 더 많이 담겨 있다. 우리가 어떤 타인을 미워할 때에는 특정한 사건에서 시작되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어떤 타인을 좋아하게 된 것에는 특별한 연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사실은 우리의 주변에는 그래도 미운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이다. 그 좋은 사람들의 곁에서 한참을 말없이 그냥 있어도 좋을 계절이 오고 있다. 이것 역시 고마운 일이다.

 

  만해문학상 수상을 김사인 시인이 사양했다. 만해문학상은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념하고 그 문학정신을 계승하여 민족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1973년 창비가 제정’해 ‘1988년 봄 계간 ‘창작과비평’의 복간과 함께 부활’한 문학상이다. 널리 알려진 이상문학상(문학사상사 운영)이나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신문사에서 운영하는 이런저런 문학상에 비해 대중성은 떨어질지 모르나 생긴지 40년이 넘는 전통이 있고, 무엇보다도 ‘민족문학의 발전’이라는 상의 제정 취지가 다른 어떤 상보다도 돋보이는 의미 있는 문학상이다.

이 상의 권위를 한 눈에 말해주는 것은 역대 수상자들이다. 1974년 제1회 수상자 신경림을 시작으로 천승세, 고은, 황석영, 현기영, 민영, 김명수, 이문구, 송기숙 등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시집과 소설작품으로 이 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매년 최근 3년간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시집, 소설집, 장편소설, 희곡집, 평론집 등)을 대상’으로 하며 ‘상금은 2,000만원’이다.

  이번 제30회 수상작으로 심사위원들(공선옥 백낙청 염무웅 이시영)은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뽑았다. 김사인 시인이 창비에서 낸 시집이다. 그런데 왜 시인은 수상을 ‘사양’했을까. 시인이 든 이유는 두 가지다. 이 상 심사과정에 자신이 관여했다는 것과, 창비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며 시집 간행 업무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간곡하게 상을 사양하며’라는 글을 통해서 이렇게 말했다.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깊은 경의와 함께 존중합니다만, 그러나 문학상은 또한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후보자의 수락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므로, 후보자인 저의 선택도 감안될 여지가 다소 있다는 외람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기대어 조심스러운 용기를 냈습니다. 만해문학상에 대한 제 충정의 다른 표현으로서, 동시에 제 시쓰기에 호의를 표해주신 심사위원들에 대한 신뢰와 감사로서, 역설적인지 모르지만 저는 이 상을 사양하는 쪽을 택하려고 합니다. 간곡한 사양으로써 상의 공정함과 위엄을 지키고, 제 작은 염치도 보전하는 노릇을 삼고자 합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알아줌을 입는다는 것, 그것도 오래 존경해온 분들의 지우知愚를 입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요. 이미 저는 상을 벅차게 누린 것이 진배없습니다. 베풀어주신 격려를 노자 삼아 스스로를 다시 흔들어 깨우겠습니다. 가는 데까지 애써 나아가보겠습니다. 저의 어설픈 작정이 행여 엉뚱한 일탈이나 비례가 아니기를 빌 뿐입니다.”(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 614~615쪽 ‘간곡하게 상을 사양하며’ 발췌)

 

  그는 그런 가만한 사람이다. 이런 시인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우리들 곁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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