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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시 읽기> 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일상적인 언어로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기다림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읽다보면 예전에 만나기로 한 다방에 미리 나가 그녀를 기다리던 시간들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시에도 나와 있지만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애리는 일’인지를.

 

시의 내용으로 보아 ‘너’는 오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나도 보고파 약속 시간보다 미리 가서 기다린다. 5분 정도 미리 간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부터 약속 장소에 갔을 것이다. 어쩌면 ‘너’가 올 방향도 둘러보고, 혹은 ‘너’가 내릴 버스 정류장에도 서 보고, 아니면 지하철 입구도 훑어 봤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기다리며 어디쯤 오고 있을까 상상을 한다. 간절한 기다림이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릴 수밖에 없고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오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다방 문이 열리면 뚫어져라 바라본다. 혹시 ‘너’가 들어설까 하고. 그러나 다른 사람이다. 또 문이 열리면 또 쳐다보고, 다시 문이 열리면 또 다시 쳐다보고…… 그럴 때마다 가슴은 더욱 쿵쿵거릴 것이다.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문이 닫히고 나면 심호흡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기로 한 ‘너’가 오지 않을 때, 기다림에 지쳐 차라리 찾아 나서고 싶어진다.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보고, ‘너’가 걸어 나올 전철 입구에서 서성일 것이다. 그렇게 ‘너’는 내게 오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너’를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방을 나와 ‘너’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맞다. 상상으로 너에게 가는 것이다. 아무리 상상이지만 얼마나 보고팠으면 오고 있는 사람을 맞으러 찾아 나섰을까.

 

전체 두 연으로 구분해 놓은 시의 내용은 기다림의 초조함과 오지 않는 사람으로 인해 절망하는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일방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오히려 찾아나서는 적극적인 행동을 보인다. 바로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러나 ‘나도 가고 있다’는 것은 사실 초조하게 기다리는 안타까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쿵쿵거리는 발자국을 따라 단지 ‘너’에게 다가가는 상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에서 기다리는 ‘너’는 누구일까. 시인은 이 시의 후기에서 ‘민주, 자유, 평화’를 말했다. 저 암울했던 80년대에 쓴 시이니 민주화의 열망 속에 시인은 그런 소망을 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 독서대중들은 그렇게 읽지 않는다. 2연 첫 행에 나오는 ‘사랑하는 이여’를 그냥 그녀 혹은 그로 읽고 싶다. 그렇게 읽을 때에 더욱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하기는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나 활자화가 된 이후에는 읽는 사람 마음이다. ‘너’를 민주, 자유, 평화로 읽던 아니면 사랑하는 님이라 읽던 시인이 뭐라 하지는 않는다.

 

‘너’가 무엇이건 간에 분명한 것은 꼭 내게 있어야 할 정말 소중한 것이지만 지금은 없는 것, 내가 바라는 어떤 것이라는 사실이다. 독자에 따라 그것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그녀 혹은 그일 것이고, 90년대를 생각하며 ‘민주주의’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가 무엇인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다리다 어쩌면 오지 않는 것은 절망일 수 있지만 시 속에서 화자는 단순히 기다림을 넘어 직접 찾아나선다는 행동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기대와 설렘이기에 그 기다림은 내게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너’가 오지 않는 절망을 딛고 ‘너’를 찾아 나서는 행위 또한 희망 혹은 미래를 향하는 것이기에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부재와 상실이라는 절망적 순간에서 오히려 희망을 건져 올리는 시’란 어느 평론가의 평은 이를 지적한 것이다. 기다림이란 꼭 ‘너’가 와야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초조와 오지 않는 절망 속에서 오히려 내일 혹은 희망을 보는 것이요, ‘너’가 오지 않는 절망적 순간에 오히려 내 삶은 ‘쿵쿵거리고’ 빛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어느 유행가에서 그랬다. 기다리는 기쁨도 있다고. 그런데 솔직히 말해 나는 기다리는 것이 참 싫다. 그래서 시인이 못되는지도 모른다.

​―http://blog.naver.com/lby56(이병렬 교수의 블로그, 현산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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