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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상상하기

 

  시에서 언어는 절대적이다. 다시 말하면 시는 언어로 되어 있다. 그 언어는 일반적인 생활언어이다. 그 언어는 주로 감각에 의해 수용된 주관적인 말이다. 하늘을 나는 새 소리, 혹은 한밤중 어디선가 내리치는 망치 소리만을 적어도 시가 된다. 그것은 아무 뜻도 없다. 시는 자신만의 말소리와 모양과 냄새와 맛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시인은 말을 많이 그리고 잘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언어의 속성과 성격 등 말의 삶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쓰는 언어를 모르고 시를 쓸 수는 없다. 그가 쓰는 말은 어머니 언어, 풍토적인 언어, 즉 태생적인 말은 타인의 말과 섞이며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말은 감각어이다. 말 속에 소리와 모양이 있다. 그만큼 우리말은 음성적이며 형상적이다. 생활의 현장에서 저절로 떠오른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에는 우리 민족의 생활상과 민족성, 그리고 피와 눈물이 그대로 감겨 있다. 이런 우리말이 정치사회적인 영향으로 많은 변화와 굴곡을 겪어왔다. 말이란 인간처럼 생로병사가 있어서 시 속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우리 사전 속의 말 대부분은 한자어이다. 그것은 과거의 정치사회적인 영향 때문이다.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서 살다보니 우리말이 생활 속에서 많이 사라지고, 우리말의 자리를 중국에서 수입한 한자어가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건너온 한자어는 성리학과 함께 들어오다 보니 생활어보다는 관념어가 많다. 관념어는 사상, 즉 뜻을 표현하는 언어이다. 관념어는 사상, 즉 뜻을 표현하는 언어이다. 시란 사상을 표현하는 양식이 아니다. 시는 우리의 감각이나 생활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언어로 되어 있다. 그래서 시의언어는 순수한 우리 전통의 감각이나 생활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을 많이 쓴다. 더욱이 우리말 중에서도 풍토적인 말을 사용한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사람들이 쓰는 말이 곧 풍토어이다. 그것이 곧 모어母語인 것이다. 모어는 어머니의 목소리나 어린 시절 친구들의 억양과 같다.

  따라서 시에서 한자어를 쓰면 그 느낌이 반감된다. 우리가 접하는 한자어는 대부분 관념, 즉 머릿속의 언어이다. 시의 언어는 가슴에서 울리는 언어, 피부로 느끼는 언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감각의 언어이다. 다시 말하면 오감五感의 언어이다. 물론 관념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념시는 우리 신의 본령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과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순우리말을 알아야 한다. 시는 의미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생활의 감각을 표현하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철저히 생활어이면서 감각어이다. 우리말에 의성어나 의태어가 발달되어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말이 오랫동안 우리의 생활과 함께 성장해온, 우리 민족과 함께 환 감각어이기 때문이다. 한자어가 뜻의 이해를 중시하는 말이라면 우리말은 소리나 모양, 맛, 촉감 등 오감에서 온 말이다. 시의 언어는 감각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우리말에 대해 깊이 있는 관심을 갖고 우리말을 수집해야 한다. 우리말 꽃 이름, 우리말로 된 부사나 형용사, 동사 등에 대한 관심 없이 시를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순우리말로만 된 시도 얼마든지 있다.

  다음 김소월의 시 「먼 후일」을 보면 순우리말, 그것도 아주 쉬운, 누구나 쓰고 있는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만큼 이 시는 우리의 감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한다.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은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위 시는 모두 순우리말로 되어 있다. 그만큼 쉽고 우리 정서에 잘 맞는다. ‘잊었노라’를 중심으로 ‘찾으시면’, ‘나무라면’, ‘잊고’와 ‘말’, ‘그리다가’, ‘믿기지’, ‘먼 훗날’ 대비하여 보다 강하게 그리움을 정서적으로 점층화하고 있다. 그만큼 시에서 우리말은 우리 정서와 가장 잘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철, 『언어적 상상력으로 쓰는 시 창작의 실제』, 푸른사상,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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