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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웃어라/임승유 

 

  팬티를 뒤집어 입고 출근한 날

  너는 왜 자꾸 웃는 거니

 

  공장장이 한 말이다

  귤처럼 노란 웃음을 까서 뒤집으면 하얗게 들킬 것 같아

  오늘은 애인 없는 게 참 다행이고

 

  너는 왜 자꾸 웃는거니

  공장장은 그렇게 말하지만 예쁜 팬티를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나는 팬티 같은 건 수북하게 쌓아놓고 오늘은 꽃무늬 내일은

범표무늬

 

  어제는 나비를 거느리고 다녔다 결심을 유보하느라 계속해서

뻗어나가고 있는 넝쿨식물처럼

 

  내가 딴 생각에 빠지면

  손목이 가느다란 것들은 믿을 수가 없어 공장장은 중얼거린다

 

  나에겐 아직 애인이 없고

  공장장과 함께 밥을 먹는다

 

  팬티 속을 만지면 울어본 적 없는 울음 설명할 수 없는 오후

  번지듯 피어나는 꽃잎을 물고 나비는 날아가버리고

  그걸 알아봐준다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웃지 않고 어떻게 마주 앉을 수 있는 걸까

 

  애인은 어떤 식으로 생기는 걸까

 


<시 읽기> 계속 웃어라/임승유

 

 

임승유 시인의 「계속 웃어라」는 직장 내 성폭력의 상황을 역발상으로 전환시켜 경쾌한 화법으로 담아낸 시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현실 인식이 냉철하다. 그런데 그 상황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는다. 강의 내용 중에 어두운 것을 더욱 더 강조하여 더 어둡게 내밀하게 다루는 방식이 있고, 어두운 것을 경쾌하게, 또는 괜찮은 척하며 다루는 방식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임승유는 후자 쪽에 해당한다. 그동안 페미니즘 시는 여성이 억눌림 당하는 현실을 폭로하거나 고발하는 형태를 통해 남성 중심 사회가 가진 불합리를 부각시키는 형태를 자주 취해왔다. 그런 방식의 시는 이미 많이 쓰여졌다. 그러니 임승유 같은 시적 상상력과 전략을 갖추고 불합리, 어둠, 우울 등과 같은 정서의 시도 새롭게 보이도록 써야 한다. 예기치 못한 그 ‘무엇’의 방식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임승유는 「계속 웃어라」에서 웃을 수 없는 상황을 웃어야 되는 상황으로 전환해서 보여준다. 공장장에게 성적 횡포를 당하면서도 그 상황을 웃어넘기려 하는 시니컬한 태도를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직장 내 성폭력적인 상황을 우회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팬티를 뒤집어 입고 출근한 날/너는 왜 자꾸 웃는 거니”하고 공장장이 말할 수 있기에 공장장과 화자의 관계는 두 사람만이 아는 관계다. “아직 애인이 없”는 상태에서 ‘나’가 공장장과 관계를 맺기에 두 사람은 불륜이거나 성착취의 관계가 된다. 그런데 그 관계의 진실이 빨리 드러나면 이 시가 갖는 재미는 사라진다. 그래서 시인은 천천히 관계를 암시하는 표현을 시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나’가 “딴 생각에 빠지면/손목이 가느다란 것들은 믿을 수가 없어”라고 공장장이 중얼거리는 것을 통해 불륜보다는 성착취에 가깝다는 것을 암시한다. “팬티 속을 만지면 울어본 적 없는 울음 설명할 수 없는 오후”가 화자에게 나타나기에 더더욱 착취에 가깝다. 그런데 그런 성 착취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나비를 거느리고 다녔다 결심을 유보하느라 계속해서 뻗어나가고 있는 넝쿨식물처럼” 이란 표현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다른 사람들은/웃지 않고 어떻게 마주 앉을 수 있는 걸까//애인은 어떤 식으로 생기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져 공장장과 화자의 관계가 불변할 것임을 암시한다. 애인이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화자가 여전히 가식적으로 웃으면서 공장장과 마주앉아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기치 못한 그 ‘무엇’은 기존의 잘된 시의 방식을 한 번 더 탈피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새로운은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다른 발상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조금 더’, ‘한 발 더’ 역발상을 보여주면 된다. 예기치 못한 ‘무엇’을 위해 발상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섬세하게 이루어지도록 자신만의 ‘역발상’을 찾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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