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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7 03:41

흰둥이 생각/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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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생각/손택수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

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누우신 아버지의 약봉

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

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

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 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

지 다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

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히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시 읽기> 흰둥이 생각/손택수

 

우리는 유년 시절 집에서 기르던 개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씩을 누구나 갖고 있다. 이 시는 한 소년이 갖게된 개에 대한 이야기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써내려 가고 있다. 이 시인은 개에 얽힌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소년은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자기 주변 가까이에 있는 대상에게 풀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개(검둥이)를 걷어차거나 개의 목줄을 잡고 쥐불놀이하듯 뱅뱅 돌리다가 벽을 향해 내팽개치고 나면 속이 후련해졌다고 한다. 시인은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 정말 절망스러운 시간에 불현듯 수십 년 동안 잊고 지내온 개가 생각났다.

기억 바깥에 내팽개쳐 놓고 일부러 외면해 온 강아지의 젖은 눈망울이 떠오르는 순간 통증이 일어났다. 마치 무거운 천장이 가슴에 내려와 얹힌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가족과 떨어져 살던 유년 시절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개에게 풀었던 것이다.

그런 개가 어느 날 죽었다. 툇마루 아래 깊은 어둠 속에 웅크린 채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러다가 일주일만에 눈을 감았다. 그 후 시인은 검둥이를 소재로 시를 써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드렸지만 고통이 가시지 않았다”

 

글을 쓰려면 대상과 어느 정도의 거리가 확보되어야 한다. 시인이 검둥이를 글로 쓸 수 없었던 이유는 검둥이와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둥이를 흰둥이로 바꾸었을 때 대상과의 거리가 생기고 비로소 시인은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시는 흰둥이를 생각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화자가 강아지를 풀어주는 선택은 우리를 뭉클하게 한다. 그보다 훨씬 더 큰 울림이 전해오는 부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와’ 있는 흰둥이다.

 

‘다음 날 아침 멀리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 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흰둥이는 소년이 쫓는대로 달아나다 집이 생각나서 인지 주인의 약값 때문이었는지, 어디에 생각이 미쳐서 인지 알 수 없지만 집으로 되돌아 온다. 흰둥이는 이제까지 자기를 돌보아준 주인을 생각해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찌 됐건 흰둥이는 돌아와 밥그릇을 달디달게 핥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장면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문학을 이야기 하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면서 우리 삶에서 정말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 묻기도 한다. 때로 종교적 명상에 들기도 한다. 내 마음이 평화를 위해서 또는 인류를 위해서 기도하기도 하면서 경건하게 의미있게 살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하여 몰두하고 있는 나머지 주변의 생명체들의 존엄함을 무시하거나 그냥 지나친다. 이들에 대한 배려는 사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시에는 개와 인간의 정서적인 교감이 슬프지만 아름답다. 흰둥이는 병든 아버지의 약값을 대신하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간다. 소년이 이 장면을 아프게 바라보고 있다. 이 소년의 마음을 흰둥이의 선한 젖은 눈빛으로 달래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읽고 나서는 하찮게 여겼던 주변의 살아있는 것들을 이제는 어떤 자세로 만나야할지 생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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