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 문학 2020년 가을, 겨울호
빈 운동장
교문은 민들레가 문지기로 서고
바람은 할 일 없이 툭 툭 공을 구르다가
흙모래만 몰아 패대기를 친다
아침에 올라간 게양대 태극기
'동해물가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해 질 녘까지 내려오지 않고
와글와글 시끌벅적
학교가 째질 듯 뛰고 솟던 교정
긴 하루가 지니
코로나 19,
시커먼 이 그림자가 운동장을 활보한다.
이사한 엄마
다시는 못 본다 이제는 잊자 하니
아파서
이사한 거로 생각기로 했다
이삿짐도 없는데
내 짐은 뭣 하러 들어갔어
밤에 화장실 문턱은 잘 넘어갔는지
이마에 혹은 안 붙었는지
하릴없어 엄마 생각
엄마 오고 싶을 땐 언제나 와
엄마 방 비웠어
혹 내가 자고 있으면
날 샜다!
컴퓨터를 하면
뭐 하냐!
소리를 질러도 나가라고 안 할게.
어느 골짜기가 얼어붙었단다
잠시 쉬었다 가겠다는 듯이
어떤 한 계절도
잠시 얼었다만 가도
한 계절만큼은 벌고 갈 텐데
아무리 말리고 붙잡아도
앞으로 흘러만 간다지
서향(西向)집
종일 어두컴컴하다가
석양이 오면 금방 환해지며
창문을 열어놓으면
한 번에 안방까지 쓱
들어오기도 하고
늦가을이면 서창(西窓)에
한 폭의 나무 그림이
걸리기도 하는데
나는 이 그림을 지울
어둠이 올 때까지
사진을 찍는다
늘 그런 건 아니고
잎 내린 빈 나무에서 헐거워진
아버지가 보일 적에만
찍고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