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작가 21호
동지 밭죽 외 1편 /김옥순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는 날
절기로 지키지는 않지만, 재미로 팥죽을 끓였다
엄마가 끓어줘 먹었던 어린 시절을 느껴볼까 해서
나름 신경 써 끓였는데
이불 같이 덮는 사람이 맛없단다
새알을 안 넣어서
나는 대번에 배가 불러 그렇다고 면박을 줬다
그렇지 않은가
어린 시절에는 시래기 국밥도 입에 달았는데
하물며 팥물에 찹쌀로 죽을 끓였는데
맛없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엄마 한 그릇 나 한 그릇 먹고
아들은 이따 먹는다고 하지만
먹어보나마나 맛없고 말할 것이 뻔하다
라면 맛보다 먼 팥죽 맛이니까
그렇다 해도 나는 즐겁다
어린 시절엔 커다란 가마솥에다
소죽만큼이나 끓여
한 양푼 퍼 두었다가 동지섣달 긴긴밤
이불 밑에서 먹었던 식은 죽맛
며칠을 두고 먹어도 맛도 안 변햇던 죽
대신 이 죽은
내일 저녁이면 맛이 떠날 것이다
그 시절 식은 죽이 아닌
배부른 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