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빈 방으로
최하림
달이 빈방으로 넘어와
누추한 생애를 속속들이 비춥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속옷처럼
개켜서 횃대에 겁니다 가는 실밥도
역역히 보입니다 대쪽같은 임강빈 선생님이
죄 많다고 말씀하시고, 누가 엿들었을라,
막 뒤로 숨는 모습도 보입니다 죄 많다고
고백하는 이들의 부끄러운 얼굴이 겨울 바람처럼
우우우우 대숲으로 빠져나가는 정경이보입니다
모든 진상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나는 눈을 감을 수도 없습니다
"달이 빈 방으로" (전문)
** 서정시는 순간의 장르다. 산문은 축척의 원리를 따르지만 시는 압축의 원리를 따른다.
탑을 쌓아가듯이 쓰는 것이 산문이라면, 다 사용한 캔을 프레스기로 압축한 것이 시다.
그러므로 시는 대단히 경제적인 장르다. 시가 짧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시 창작강의 31쪽 이지엽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