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숙 시집 허풍쟁이의 하품

by 들국화 posted May 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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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숙 시집 허풍쟁이의 하품 

마리오네트 주름 / 고경숙

꽃다발 들고 서쪽을 향해 달려가다 풀썩 넘어진
저녁이 우네
손바닥에 무릎에 붉은 노을 범벅이 되었네

도도하게 걷던 두 시의 태양과 힐을 집어 던지고
마른 젖을 물리던 세 시의 나뭇잎들, 그리고 늙지 않는
다섯 시의 그녀가 거리에 있네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고,

스테플러에 몇 장씩 묶인 시간이 도움닫기
발판처럼 거리에 널브러져있네

왼발 부터 내디덨어야 했나 제자리 뛰기를 했어야
했나 잠깐이라도 고민해보았더라면, 저 해를 놓치지
않았을까

제 다리를 깔고 앉아 출렁거리는 뒤통수, 팔다리가
엉키지 않게 모로 누워있다 음악이 들리면 벌떡,

완벽하게 일어서야 하네

항구는 밤을 끌고 온 배들의 정박을 돕고 숄 하나
걸치지 않은 어린 집시처럼 이 생 또한 턱없네

이 춤을 언제 멈춰야 하나 춤추는 동안 우리는
사랑을 하긴 한 걸까 강처럼 깊게 패인 주름에
입맞추네

미세한 떨림으로 입술근육을 움직여보네
덜렁거리는 턱 근육은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늙지 않을래 웃다가 우네

오, 마리오네트 절름절름 춤을 추네 


** 마리오네트, 인형의 마디를 실로 묶어 사람이 위에서 그 실을 

조절하여 연출하는 인형극** 


(마리오네트 주름)의 배경은 일몰 무렵이다. "꽃다발 들고

서쪽을 향해 달려가다 풀썩 넘어진 저녁이 우네
손바닥에 무릎에 붉은 노을 범벅이 되었네"라는 구절에 따르면, 

서쪽을 향해 달려가다 풀썩 넘어진 저녁의 시간, "붉은 노을 범벅"이 되는 

 하루의 끝이라고 장석주 평론가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