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숙 시집 허풍쟁이의 하품
마리오네트 주름 / 고경숙
꽃다발 들고 서쪽을 향해 달려가다 풀썩 넘어진
저녁이 우네
손바닥에 무릎에 붉은 노을 범벅이 되었네
도도하게 걷던 두 시의 태양과 힐을 집어 던지고
마른 젖을 물리던 세 시의 나뭇잎들, 그리고 늙지 않는
다섯 시의 그녀가 거리에 있네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고,
스테플러에 몇 장씩 묶인 시간이 도움닫기
발판처럼 거리에 널브러져있네
왼발 부터 내디덨어야 했나 제자리 뛰기를 했어야
했나 잠깐이라도 고민해보았더라면, 저 해를 놓치지
않았을까
제 다리를 깔고 앉아 출렁거리는 뒤통수, 팔다리가
엉키지 않게 모로 누워있다 음악이 들리면 벌떡,
완벽하게 일어서야 하네
항구는 밤을 끌고 온 배들의 정박을 돕고 숄 하나
걸치지 않은 어린 집시처럼 이 생 또한 턱없네
이 춤을 언제 멈춰야 하나 춤추는 동안 우리는
사랑을 하긴 한 걸까 강처럼 깊게 패인 주름에
입맞추네
미세한 떨림으로 입술근육을 움직여보네
덜렁거리는 턱 근육은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늙지 않을래 웃다가 우네
오, 마리오네트 절름절름 춤을 추네
** 마리오네트, 인형의 마디를 실로 묶어 사람이 위에서 그 실을
조절하여 연출하는 인형극**
(마리오네트 주름)의 배경은 일몰 무렵이다. "꽃다발 들고
서쪽을 향해 달려가다 풀썩 넘어진 저녁이 우네
손바닥에 무릎에 붉은 노을 범벅이 되었네"라는 구절에 따르면,
서쪽을 향해 달려가다 풀썩 넘어진 저녁의 시간, "붉은 노을 범벅"이 되는
하루의 끝이라고 장석주 평론가는 말한다.
나는 요즘 아침에 자고 오후에 일어나
밖에 나가는 시간이 해거름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은 석양 해거름 저녁노을,
여기에 머물고 만다. 좋아하긴 하는데 생각은 보이는 것
지는 해뿐인데, 이 시, 마리오네트 주름, 은
일몰을 배경으로 쓴 시라는데
이것이 줄 달린 인형극에 비유했단다
시인은 천재적인 생각을 해야 독자들이 감동한다는데
나는 이 시 제목부터가 낯설었다 그렇다고 그냥
덮어놓을 수도 없었던 것은
책을 보기 위해 구입했는데 안 읽을 수 없어 사전을 찾아보니
이건 인형 마디에 줄을 달아 사람이 조절 연출하는 인형극이란다
고경숙 시인의 "허풍쟁이의 하품"은 시 제목이 외래어로 쓴 것이 많다
국어 국문을 고집하는 나로선 재미있는 시집이라고 할 순 없지만
해설을 읽고 사전을 찾아가면서 시를 감상하니 그런대로 깊이가 있었다
해설가의 글을 빌리면 더러는 몽환적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