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忘却
열어두고 나선 것은 아닐까, 몇 걸음 떼어놓다가 미심쩍어 다시 돌아섭니다. 고리를 잡아당겨 보고 나서야 문이 잠겼음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습니다.
나이 들면서 잊는 일이 잦아집니다. 가끔은 승강기를 되잡아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수고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무엇을 또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햇빛 아래 멈추어 서서 갸우뚱거리게 됩니다.
망각忘却은 병입니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가 으레 그렇거니, 얼마간의 불편을 받아들인다면 망각은 병이 아니라 축복祝福입니다. 뼈에 새겨진 아픔이 아니라면 웬만한 것은 아예 잊고 살라고 신은 우리에게 망각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나이 들면 많은 것을 잊어버립니다. 정확하게 계량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새롭게 기억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잊어서 머리가 반쯤 비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잊어도 될 만큼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니, 먼 산 바라보듯 무심한 마음으로 편히 살아야겠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끓이지 마시지요. 마음의 평안을 위하여 이제는 더 많은 것을 잊고 살아야 하는 것을, 흐르는 세월에 몸을 맡겨놓으시지요.
-그대와 함께 가는 마음 여행길 『동행』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