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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말은 말이 반이고 침묵이 반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성복, 《무한화서》


우리가 말을 하는 가운데 침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도 반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굳이 산술적으로 계산하자면 말은 반도 안될 것이다. 침묵이 훨씬 더 크니 말이다. 아니 침묵이 어느 정도 더 큰지 우리는 가늠할 길이 없다. 우리는 그저 말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홀연히 깨닫고 받아 들여야 할 뿐이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기도하는 행위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말이며, 더욱이 그런 몸을 따르는 마음의 신음이다. 마음이 어찌 몸의 소리를 다 들으며 듣는다고 해서 다 내뱉을 수 있을까? 그래서 신음이다. 이것은 침묵이기도 하고 절규이기도 하다. 서로 반대인 침묵과 절규가 오묘하게 역설적으로 얽혀 신음이 된다. 그래서 기도는 가장 깊은 삶의 언어다. 말하는 언어 이상으로 ‘말 없는 언어’다. 기도하는 사람이 그 기도에 어떻게 모든 절규를 담아낼 수 있겠는가?

1960년대를 풍미한 사이먼 앤 가펑클Simon&Garfunkel의 〈침묵의 소리Sound of Silence〉라는 노래가 있다. 절묘하고도 역설적인 제목이다. 침묵인데 소리가 난다. 소리 없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지르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지르는 것이라면 지르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르지 않을 수 없어 터져 나왔으니 ‘질러진 소리’일 뿐 내가 지르고 말고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게 내가 어찌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소리가 침묵의 소리다. 그래서 신음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침묵의 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내지르려 하기 전에 먼저 들어야 한다. 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저 깊은 곳에서 밀려나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내가 들어야 신도 들으신다. 만약 신이 계시다면 말이다. 신은 높고 높은 보좌에 군림해서 계시기보다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절규하는 침묵의 소리를 들으시고 나로부터 어느새 그런 소리를 끌어내실 것이다.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끌어내시는 사건’으로서 신은 우리의 기도 안에서 우리의 기도를 만들어간다.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우리는 기도하고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나 자신이 과연 무엇이 되어가는지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신은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떠받치고 있는 사건’이니 말이다.

신 역시 침묵하고 있을 때가 많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침묵하시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아니, 사실 신이 얼마나 말씀을 하시는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 길이 없다. 인간인 우리는 신의 말씀보다도 신의 침묵이 더욱 견디기 힘들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온갖 추측성 미사여구를 가지고 호언장담하듯이 ‘신의 뜻’을 운운한다. 여기서 엄청난 폭력이 발생한다. 인간을 억압하고 신을 폭군으로 만드는 폭력 말이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어색한 침묵이 흐르면 잡설을 늘어놓게 되듯이 신의 침묵을 견디기 힘든 사람들이 떠들어내는 온갖 변신론들은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폭력이 되고 만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잡설을 내뱉은 사람이나 들은 사람이나 모두 노예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을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침묵도 말이기 때문이다. 아니, 말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묵이 오히려 말이 뜻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저 깊은 곳에서 밀려나온다고 했지만 그 소리가 어찌 다 터져 나올 수 있을까? 얼마나 나올 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침묵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신의 침묵뿐만 아니라 인간의 침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 글은 박수호 시창작 카페에서 모셔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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