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공격을 의연히 대처하지 못하고 왜 남의 손을 빌려 막으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의연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본인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수 선생처럼 유명하신 작가는 돈을 많이 버셨다 한들 그것이 무슨 죄이겠는가? 집에 냉장고가 몇 대이건 노래방이 있건 호화 요트가 있건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매력적인 권력이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을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낮은 화천군에서 75억원을 들여 이외수문학관을 건립했고 작가 개인 공간인 집무실과 거실을 짓는 데만 26억원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장애인 문예지 ‘솟대문학’이 통권 88호로 지금 100호를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 1권씩만 보관해도 88권, 100권씩 보관하면 8800권이다. 늘어나는 책들을 15평 사무실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요즘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사무실을 찾아 다녔다. 시내에서 벗어나더라도 휠체어 때문에 편의시설은 있어야 하기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을 보니 보통 보증금 1800만원에 월 180만원이다. 수입도 없이 어떻게 한 달에 200만원을 장소 사용료로 지출할 수 있단 말인가? 솟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는 450여명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장애인 독자까지 합하면 1000여명에 이르지만 우린 앉아 있을 자리조차 없는데 한 개인 작가를 위해 정부가 75억원을 지출했다는 사실에 박탈감을 느낀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사단법인 승인을 받은 장애인예술단체는 19개이다. 이 가운데 월세를 내지 않고 자신의 사무실을 갖고 있는 곳은 단 1개이다. 법인 승인조차 받지 못한 장애인예술그룹은 40여개인데 이들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장애예술인이 5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들은 작업 공간이 없는 떠돌이 예술인인 것이다. 그래서 장애예술인들이 정부에 장애예술인센터 마련을 건의했고. 그 예산으로 150억원을 올리며 50억원이라도 예산 항목을 꼭 만들어달라고 애원을 했건만 묵살당하고 말았다.
유명한 한 사람을 위해서는 75억원을 투자해도 5만명의 장애예술인을 위해서는 단 1원도 쓰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의 예술정책이다. 이런 편견적 시각으로는 탁월한 예술인을 발굴해서 예술작품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영원한 자산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C 데이 루이스에 의하면 최초의 예술가, 특히 시인은 장애인이었다고 한다. 태고의 시인들은 다른 부족민처럼 실용적인 것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들을 도울 수 있는 어떤 방법, 특히 창조적 본능을 만족시키는 것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장애인이 예술활동 욕구가 더 강하고 따라서 창작 능력이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세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장애예술인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작가 셰익스피어는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이 밖에 지체장애를 갖고 있었던 작가 이솝, 손자, 사마천, 세르반테스, 바이런 등은 세계 문학의 금자탑을 이루었다.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인 <실락원>은 밀턴이 실명한 후에 쓴 작품이고 <오딧세이아>의 저자 호메로스도 시각장애인이었다. <인간의 굴레>의 작가 서머싯 몸과 <데미안>을 쓴 헤르만 헤세는 언어장애인이었다.
이렇듯 장애예술인은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키운다면 우리도 세계적인 작가를 탄생시킬 수 있다. 그런데 트위터 제왕이 과연 세계적인 작가의 조건이 되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