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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5 02:36

쉬 / 문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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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쉬이어이쿠어이쿠 시원하시것다아” 농하듯 어리뢍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몸 갚아 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셨을까요.

툭 끊기는 오줌발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시 읽기>  /문인수

 해방둥이 문인수 시인은 마흔이 넘어서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하지만 시적 성취는 어느 시인보다 높아 환갑 지나 시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이 시는 정진규 시인의 부친상에 문상을 갔다가 선친에 대한 회고담을 듣고 쓴 시인데 문인수 시인의 대표 시가 되었다문상을 다녀와 순식간에 쓰였을 것이다그만큼 이 시는 막힘이 없이 활달하다.

환갑이 지난 아들이 아흔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고 있다정신은 아직 초롱한 아버지가 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떠나 버린 스스로의 몸에 난감해하실까 봐 아들이 아버지쉬이어이쿠어이쿠시원하기겄다아며 농반 어리광 반을 부리고 있다상상만으로도 그 모습은 흐뭇하고 뭉클하다이 는 단음절인데 그뜻은 다의적이어서 긴 여운을 남긴다일차적으로는 오줌을 누시라는 말이겠고아버지가 오줌을 누시는 중이니 우주로 하여금 조용히 하라는 말이겠다아버지를 향해우주를 향해그리고 신을 향해 내는 울력의 소리이자 당부의 소리이고주술의 소리일 것이다.
오줌발을 길고 긴 뜨신 끈으로 비유하는 부분은 압권이다계산해 보지는 못했지만 한 사람이 평생 눈 오줌발을 잇고 잇는다면 지구 한바퀴쯤은 돌 수 있지 않을까그 길고 뜨신 오줌발이야말로 한 생명의 끈이고 한 욕망의 끈이다그 길고 긴 뜨신 끈을 늙은 아들은 안타깝게 당에 붙들어 매려하고 더 늙으신 아버지는 이제 힘겨워 끝내 땅으로부터 풀려한다아들은 온몸에 사무쳐 몸 갚아 드리듯” 아버지를 안고안긴 아버지는 온모을 더 작고 더 가볍게 움츠리려 애쓴다안기고 안은 늙은 두 부자의 대조적인 내면이 시를 더 깊게 한다.

마지막 행의 는 첫 행의 상가喪家를 떠올릴 때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이제 아들이 쉬소리도툭툭 끊기던 아버지의 오줌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그 길고 긴 뜨신 오줌발도 쉬이렇게 조용히 끊겨 버린 것이다때로 시가 뭘까 고민을 할 때 이런 시는 쉬운 답을 주기도 한다삶의 희로애락을 한순간에 집약시키는 것그 순간에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통찰이 녹아 있는 것이라는이 시가 그렇지 않는가.
정끝별 엮음애송시 100민음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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