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하시것다아” 농하듯 어리뢍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 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셨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시 읽기> 쉬/문인수 해방둥이 문인수 시인은 마흔이 넘어서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하지만 시적 성취는 어느 시인보다 높아 환갑 지나 시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시는 정진규 시인의 부친상에 문상을 갔다가 선친에 대한 회고담을 듣고 쓴 시인데 문인수 시인의 대표 시가 되었다. 문상을 다녀와 순식간에 쓰였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시는 막힘이 없이 활달하다. 환갑이 지난 아들이 아흔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고 있다. 정신은 아직 초롱한 아버지가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떠나 버린 스스로의 몸에 난감해하실까 봐 아들이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하기겄다아”며 농반 어리광 반을 부리고 있다. 상상만으로도 그 모습은 흐뭇하고 뭉클하다. 이 ‘쉬’는 단음절인데 그뜻은 다의적이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일차적으로는 오줌을 누시라는 말이겠고, 아버지가 오줌을 누시는 중이니 우주로 하여금 조용히 하라는 말이겠다. 아버지를 향해, 우주를 향해, 그리고 신을 향해 내는 울력의 소리이자 당부의 소리이고, 주술의 소리일 것이다. 오줌발을 “길고 긴 뜨신 끈”으로 비유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계산해 보지는 못했지만 한 사람이 평생 눈 오줌발을 잇고 잇는다면 지구 한바퀴쯤은 돌 수 있지 않을까. 그 길고 뜨신 오줌발이야말로 한 생명의 끈이고 한 욕망의 끈이다. 그 ‘길고 긴 뜨신 끈’을 늙은 아들은 안타깝게 당에 붙들어 매려하고 더 늙으신 아버지는 이제 힘겨워 끝내 땅으로부터 풀려한다. 아들은 온몸에 사무쳐 “몸 갚아 드리듯” 아버지를 안고, 안긴 아버지는 온모을 더 작고 더 가볍게 움츠리려 애쓴다. 안기고 안은 늙은 두 부자의 대조적인 내면이 시를 더 깊게 한다. 마지막 행의 ‘쉬’는 첫 행의 상가喪家를 떠올릴 때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이제 아들이 쉬- 소리도, 툭툭 끊기던 아버지의 오줌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길고 긴 뜨신 오줌발’도 쉬! 이렇게 조용히 끊겨 버린 것이다. 때로 시가 뭘까 고민을 할 때 이런 시는 쉬운 답을 주기도 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한순간에 집약시키는 것. 그 순간에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통찰이 녹아 있는 것이라는, 이 시가 그렇지 않는가. ―정끝별 엮음, 『애송시 100편』, 민음사, 2008. |
Who's 들국화
관리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