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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2 02:16

긍정적인 밥/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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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밥/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해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듯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이 하나 없네

 

<시 읽기>  긍정적인 밥/함민복

 

아무리 하찮게 산//사람의 생과 견주어 보아도//는 삶의 사족蛇足에 불과”()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이 돈을 쥔다끙끙대며 밤을 새우면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국밥이 한 그릇굵은 소금이 환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맣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라고 말한다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 낸 그것들에 비할진대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납부 통지서만 날아오는가/아니다 이것이야말로/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자본주의의 사연)라고 노래했고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었다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마당에 고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숭어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 후계자 시인이 되었다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리박는 것이아니라 뻘이말뚝을 품어 제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 보지/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승리호의 봄)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부드러움의 시학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단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 시’ 명편들을 낳고 있다강화도의 물때 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

문태준 역음애송시 100민음사, 2008.

 

** 박수호 시창작, 좋은 시 방에서 모심**  

댓글

  • 02:08 새글

    첫댓글 오늘 내 마음에 새겨보는 시입니다. 첫 번째는 멋모르고, 두 번째는 신나게 책을 지었는데, 세 번째는
    이것도 시 인가 생각하니 아직 먼 것만 같아 부끄러워
    밥이라고 하긴 턱도 없는 설익은 밥일 것 같아 망설여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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