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밥/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해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듯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이 하나 없네
<시 읽기> 긍정적인 밥/함민복
“아무리 하찮게 산//사람의 생生과 견주어 보아도//시詩는 삶의 사족蛇足에 불과”(「詩」)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이 돈을 쥔다. 끙끙대며 밤을 새우면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 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 국밥이 한 그릇, 굵은 소금이 환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맣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 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라고 말한다. 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 낸 그것들에 비할진대. 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납부 통지서만 날아오는가/아니다 이것이야말로/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자본주의의 사연」)라고 노래했고, 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었다. 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 마당에 고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 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 숭어, 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 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리박는 것이아니라 “뻘이말뚝을 품어 제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 보지/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승리호의 봄」)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부드러움의 시학’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단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 시詩’ 명편들을 낳고 있다. 강화도의 ‘물때 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 ―문태준 역음, 애송시 100편, 민음사, 2008.
** 박수호 시창작, 좋은 시 방에서 모심** 댓글 |
2023.01.22 02:16
긍정적인 밥/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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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 들국화
관리자 입니다.
첫댓글 오늘 내 마음에 새겨보는 시입니다. 첫 번째는 멋모르고, 두 번째는 신나게 책을 지었는데, 세 번째는
이것도 시 인가 생각하니 아직 먼 것만 같아 부끄러워
밥이라고 하긴 턱도 없는 설익은 밥일 것 같아 망설여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