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서비스/장경린 봄이 오면 제비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씀바귀가 자라면 입맛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비 내리는 밤이면 발정 난 고양이를 담장 위에 덤으로 얹어드리겠습니다 아기들은 산모 자궁까지 직접 배달해드리겠습니다 자신이 타인처럼 느껴진다면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꽁치를 구우면 꽁치 타는 냄새를 노을이 물들면 망둥이가 뛰노는 안면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돌아가신 이들의 혼백은 ‘가다나순으로 잘 정돈해두겠습니다 가을이 오면 제비들을 데리러 오겠습니다 쌀쌀해진 코감기를 빌려드리겠습니다 <시 읽기> 퀵서비스/장경린 어린 시절 봄이면 어김없이 제비가 찾아와 제 몸보다 크게 벌어진 새끼들의 입에다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걸 볼 수 있었지. 제비집 아래에는 제비 똥이 그득해서 신문지를 깔아야 했지만 제비들을 위해 그 정도의 불편은 즐겁게 감당했지 언제부턴가 제비들이 다 사라졌어, 어디로 갔지? 제비가 안 보인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 봄이 오면 퀵서비스가 제비를 배달해준다잖아. 제비뿐이야? 자신이 타인처럼 느껴진다면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해주겠대, 아기 낳는 게 힘들어지면 아기를 산모 자궁까지 배달해주겠대. 와우! 나 이렇게 좋은 세상 떠나기 싫어, 천년만년 살고 싶어. 죽도록 짝사랑하는데 도무지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여자의 눈웃음과 전기가 찌릿찌릿 오는 손의 감촉과 오금이 저리는 웃음소리도 배달해줄 수 있나요? 돌아가신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내 인생이 다 들어갈 것 같은 넉넉한 눈빛과 느리고 구수한 목소리도 배달 가능한가요? 오늘 아주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데, 꿈자리가 사나우니 돼지꿈이나 용꿈으로 바뀌줄 수 있나요? 그런데, 가만! 이 말투, 어디서 들어봤더라? 당장 삶의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줄 것 같은, 답답한 현실을 확 날려버리는 것 같은, 뒤끝 없는 무한한 자유를 누리게 해줄 것 같은, 이 끈질긴 확신의 말투. 어디서 들었더라? 그래, 시에프와 전단지 광고! 시에프는 이렇게 속삭이지, 죽기 전에 반드시 사야 할 상품과 즐겨야 할 체험이 있다고, 카드에 사인하는 순간 당신의 인생은 업그레이드 된다고. 당신의 인생의 품격이 달라진다고. 원 플러스 원과 반값 세일과 공짜 쿠폰과 대박 경품도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기 전에 얼른 빨리 잡으라고. 그러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보는 거라고. 이 말에는 첨가물 향도 느껴지는 걸. 우리 아이는 사과나 딸기, 오렌지 같은 생과일을 갈아서 주면 잘 안 먹어, 사과맛 음료, 딸기맛 음료, 오렌지맛 음료가 아니기 때문이지. ‘맛’이 붙은 상품은 인공 첨가물이라는 독으로 맛을 낸 식품이라고 설명해도 안 믿어. 그 첨가물 맛이 안 나며 진짜 주스가 아니래. 걔한테는 발암물질은 용서할 수 있어도 맛없는 식품과 촌스러운 디자인은 용서가 안 돼. 맛있으면 첨가물 맛이라도 청정 자연이고 맛없으면 생과일로 만들어도 짝퉁이야. 혀와 코를 속이고 포장만 세련된 디자인으로 바꾸면 첨가물도 언제든지 신선한 자연과 푸른 초원과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순수한 원시의 대자연이 될 수 있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변질되지도 않으니 더 바랄 게 뭐 있겠어. 누가 이런 유혹에 잘 넘어갈까? 머리와 손발과 마음을 쓰지 않고도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이겠지. 옛날에는 배달이라고 하면 쌀이나 연탄, 냉장고, 가구 같은 무거운 것들이었는데, 이게 자장면과 피자 배달로 변하더니, 다방 커피와 성매매 티켓으로 발전하더니, 이제는 책이나 화장품은 물론이고 심부름도 배달이 된대. 커피나 팥빙수 심부름에서 학교 대리 출석, 대리 시험, 청소년 담배 심부름까지 ‘무엇이든’ 배달이 된대. 나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데 이런 주문이나 하고 싶어. ‘건강을 생각해서 주말마다 산에 올라가 허파와 근육의 힘찬 펌프질로 산소를 흡수하고 노폐물을 내뿜고 생명의 냄새가 풍부한 바람을 온몸으로 마시고 싶은데, 그 기분으로 멋있는 시도 몇 편 쓰고 싶은데, 산에 올라가기는 귀찮아요. 날씨가 좋은 것도 아니고, 내려오면 샤워도 해야 되고, 어떻게 산에 올라가는 불편과 수고 없이 집에 편히 누워 이걸 고스란히 즐기게 해줄 수는 없을까요.’ 그런데 말이야, 얼만 전에 한 피자 배달원이 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있었어. 배달원의 질주 뒤에는 삼십 분 배달시간제가 있었던 거지. 삼십 분이 지켜 준 따뜻하고 맛있는 온도 속에는 젊은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속도가 있었던 거야. 그 배달원은 대학 입학을 이 주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고를 당했대. 이 목숨을 건 속도를 요구하는 것은 몸을 조금 덜 움직이려는 사소한 편리와 안락이야. 몸과 머리와 마음을 덜 쓰게 해주는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서비스도 혁신적으로 바뀌고 있잖아. 힘든 노동을 해야 겨우 얻을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거든. ―김기택,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다산북스, 2016. |
*박수호 시창작 카페에서 모셔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