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김옥순 시인 홈페이지

좋은 글

조회 수 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따로 또 같이 / 정재현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도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칼릴 지부란결혼에 대하여


 쉽지 않은 말씀이다함께 있으면서 거리를 두라니사랑하면서도 구속하지 말라니마음을 나누면서 묶지를 말라니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사랑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닌가그렇게 해서 하나가 된다면 서로에게 구속은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그렇게 해서 하나가 된다면 서로에게 구속은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더 나아가 구속도 불사할 정도의 사랑이라야 참된 사랑이 아닐까?
그런데 사랑을 명분으로 집착에 빠지니 사랑과 구속이 구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나아가 본말이 전도되어 구속이 사랑을 명분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이렇게 되면 사실상 더 이상 사랑이라고 하기 어렵다그런데 그 구속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많은 비극들이 여기서 비롯된다하나라고 묶는 것이 마음을 한데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옭아매어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으로 변질된다그래서 잘 사귀어오던 연인들 사이에서 한쪽이 헤어지자고 했을 때 다른 한쪽이 받아들이지 못하고심한 경우 주변 사람들을 향한 살인으로 비화되기도 한다이래서 적당한 거리가 중요하다거리가 생명을 살리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라고 하는 동일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숭앙되어 왔다그러나 모두가 같고 나아가 하나여야 한다는 이념은 모두에게서 만장일치의 동의를 받아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어쩔 수 없이 앞뒤가 있고 위아래가 있게 된 사회에서 가진 자들이 그들이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기준으로 엮어낸 현상유지 전략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하는 구호가 마음을 모으고 힘을 결집하여 좋은 목표를 이루는 동력이 되기는 한다그러나 이면에 있는 거리를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집단주의적인 광기로 몰아가기도 한다하나라는 이념이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끔찍하고도 잔인한 폭력으로 나타났는가를 돌이켜본다면 무수한 하나들 사이의 거리는 참으로 중요하다.

 일상에서 사랑을 명분으로 집착하고 속박하는 경우 거리는 꼬인 문제를 풀어낼 해법이 되기도 한다관건은 사랑과 구속 사이의 경계를 가르는 일이다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 구속일까참나무와 삼나무가 어우러진 숲이 우리에게 구별의 지혜를 준다너무 가까이 있어 그늘로 덮어버리면 서로 자랄 수 없다는 자연의 이치가 해법을 가르쳐준다그러므로 거리는 슬퍼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이다.
정재현인생의 마지막 질문청림출판, 2020.

*박수호 시 창작에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8 시에 기대다 들국화 2024.12.04 6
167 괜찮아/ 한강 들국화 2024.11.29 0
» 따로 또 같이 / 정재현 들국화 2024.11.16 2
165 빨래를 널며(에세이문학 2010년 여름호 신인상) / 왕린 빨래를 널며(에세이문학 2010년 여름호 신인상) / 왕린 이 작품은 페이스북, 친구 페이지에서 찍어왔다 얼마 안 된 시절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아져 마음 편해지는... 들국화 2024.07.26 15
164 얼룩 박수호 감상 후기 쓰레기에 불가한 광고지를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얼룩이란 단어에 잡혀 허리를 굽혔단다 "한 시대를 건너는 동안 내 안에 묻어 있는 얼룩들을 생각... 들국화 2024.07.19 21
163 아버지의 편지/윤승천 1 들국화 2024.06.20 34
162 글은 곧 그 사람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 이글은 페이스북에서 찍어왔다 글을 쓰는 나에게 명심해야 할 지켜야 할 교훈적 글이 많은데 늙은 시인이 외우는 데는 한계가 있어 찍어왔다... 들국화 2024.06.05 25
161 꽃신 한 켤레 / 김옥순 디카시 SIMA 시마 문학매거진 2024년 봄, 18호 꽃신 한 켤레 당선 디카시 디카시 면 전면 후면 들국화 2024.03.31 21
160 이월 二月 이월 二月 겨우 이틀이거나 많아야 사흘 모자랄 뿐인데도 이월은 가난한 집 막내딸 같이 쑥스러운 달이다 입춘을 보듬고 있다 해도 겨울이 끝난 것도 아니고 봄이... 들국화 2024.03.31 23
159 자화상 / 서정주 (박수호 시 창작 카페서) 1 들국화 2024.03.19 43
158 틈 / 박상조 ㅡ 틈 ㅡ 박상조 어쩌면 우주 한쪽이 조금 벌어진 말 세상 밖에선 그저 실금이라고 어차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저 컴컴한 틈으로 꽃잎 한 장 떨어진다고 무슨 큰... 1 들국화 2024.03.08 46
157 사람 팔자 알 수 있나 / 이강흥 1 들국화 2024.02.12 48
156 꼬깃꼬깃한 저녁 / 박상조 ㅡ 꼬깃꼬깃한 저녁 ㅡ / 박상조 복직을 기다리던 날도 벌써 오래 고향에서 홀로 사는 친구가 항암 치료차 들렀다 가는 길이라고 했다 바싹 마르고 핼쑥해 보이는... 1 들국화 2024.01.10 60
155 엄마생각 / 권영하 ** 페이스북에서 모심** 들국화 2024.01.05 31
154 미소 / 구미정 시 미소 / 구미정 내 첫 시집 축하 파티에서 넉넉한 마음으로 챙겨줬던 고 구정혜 시인, 구미정 시에 공감 추억해 봤습니다. 1 들국화 2023.12.09 42
153 별 멍청이네 집 / 김남권시 1 들국화 2023.11.25 68
152 고분에서, 오태환 시 고분에서/오태환 어느 손手이 와서 선사시대 고분 안에 부장附葬된 깨진 진흙항아리나 청동세발솥의 표면에 새겨진 글씨들을 닦아 내듯이 가만가만 흙먼지를 털고... 들국화 2023.10.23 32
151 퀵서비스/장경린 들국화 2023.09.14 28
150 도굴 / 박상조 詩 도굴 / 박상조 詩 모두가 잠든 새벽 엄마는 뒷산 주인집에서 묻어 놓은 병든 돼지 새끼를 몰래 파냈다 그리곤, 몇 시간을 그렇게 콩알만 한 심장으로 칠흑 같은 ... 1 들국화 2023.07.19 72
149 바람의 냄새/윤의섭 시와해설 들국화 2023.06.21 5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