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자료> 시에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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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강의 자료> 시에 기대다 *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혹은 한다고 믿는)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자신이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믿으며 그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건 그들에게 당연하고 필요한 일일 것이다. 다만 그 자부심이 ‘오로지 내가 하는 일만 중요하다’는 독선과 아집으로 변질 된 경우를 볼 때,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까지 강요하고 인정받으려는 것을 볼 때, 씁쓸하고 거부감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은 그 자부심의 원천이 모종의 권력욕이라는 것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가치 있는 일과 또 다른 가치 있는 일이 서로 부딪힐 수도 있으며 이 세상엔 선과 악의 기준으로 편을 나눌 수 없는 갈등도 있지 않은가. 그럴 때마다 더 사려 깊게 양보를 보여주는 쪽은 대체로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무언가를 소리 높여 주장하지도 않으며 합당한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은 채, 가족들에게는 따스한 밥을 지어 먹이고 자신은 찬밥을 먹던 사람들 말이다. 이들로 인해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김경민,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포르체, 2020. *(문자메시지/이문재)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1행 계산없이 그냥 주는 돈 2행 열심히-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4행 최고의 시인 이라는 찬사 3행 최고 수준의 믿음 *화장실 시론(이정록) 첫째, 한발 더 가까이 둘째,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뿐만이 아니다. 셋째, 떠날 때는 말없이 *좋은 시란 첫째, 새로운 언어로 표현된 시 둘째, 새로운 인식을 도출하는 시 셋째, 새로운 감동을 주는 시 시의 감동은 일차적으로 시인과의 독자와의 교감, 즉 소통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모든 시가 다 울림을 갖는 것은 아니다. 허망한 소통보다는 고독한 단절이 오히려 서로를 행복하게 할 때도 있다. *없는 것을 발명하지 말고 있는 것을 발견하라(안도현) 시인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발명가’가 아니라 ‘발견자에 가깝다. 세상에는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것들이 있다. 보물인데도 보물로 보지 못하고. 숨겨진 의미가 있는데도 의미를 찾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머리를 굴리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시를 기다리지 마라. 살갗은 보지 말고 뼛속을 보라. *시 제목 첫째 본문의 주제나 내용과 일정한 조화를 이루도록 할 것 둘째, 너무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제목은 피할 것 셋째, 본문의 내용은 모두 풀어 제시하는 제목은 피할 것(안도현) 제목은 대표성, 환기성, 몰입성, 암시성 등을 요구한다. 한번 들으면 잊지 않게 하는 대표성이 필요하고 시의 핵심을 떠올리게 하는 환기성이 필요하며, 독자의 감정과 감각이 빨려들게 하는 몰입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궁금증이 생기게 하는 암시성이 필요하다. 러니 시를 미리 설명하지 않으면서,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표성, 환기성, 몰입성, 암시성을 갖게 하는 제목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하린) *시가 고백적 양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과장이다. 둘째, 감상感傷이다. 셋째, 현학이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를 택해 쓰느냐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소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적 경험은 나의 경험의 일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나의 경험 중에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 것을 우리는 시적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시인은 경험한 것에 대하여 쓴다. 하지만 경험한 것을 곧이곧대로 쓰지는 않는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해본다고 많은 시적 경험이 쌓이는 것은 아니다. 바쁘게 한 세상을 살아왔다고 그 수많은 경험들이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소재를 해석하는 능력, 즉 상상력의 도움 없이 어떤 소재에 매달리는 것은 소재주의의 늪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무엇’을 쓰려고 1시간을 끙끙댈 게 아니라 단 10분이라도 ‘어떻게’ 풍경과 사물을 바라 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시의 소재-한 알의 사과 1)사과를 오래 바라보는 일 2)사과의 그림림자를 관찰하는 일 3)사과를 담은 접시를 함께 바라보는 일 4))사과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뒤집어 보는 일 5)사과를 한입 베어 물어보는 일 6)사과에 스민 햇볕을 상상하는 일 7)사과를 기르고 딴 사람과 과수원을 생각하는 일 8)사과가 내 앞에 오리까지의 길을 되짚어 보는 일 9)사과를 비롯한 모든 열매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일 10)사과를 완전하게 잊어버리는 일 *시란 개인적인 욕망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의 발산 형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의 욕망을 억제하고, ‘나’의 욕망 가운데 가지 있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남과 다른 세계를 유형화해 보여주는 의도적 행위다.(오규원) *묘사의 힘 “내가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사물이 대신 이야기해준다”고 눈에 번쩍 뜨이는 말을 해준 이는 연암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감정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시인의 받아 적기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감정을 언어화하는 이 과정을 ‘묘사’라고 한다. 그러니까 묘사란 감정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것이다. 시인이 묘사한 언어를 보고 독자는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 그림을 이미지라고 한다. *좋은 시 좋은 시란 어떤 시를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좋은 시란 이것이다. 라고 정의하는 순간, 모든 시는 그 낡은 기준에 갇혀버리는 나쁜 운명을 맞게 된다. 시가 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양식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해본다면 첫째, 새로운 언어로 표현된 시 둘째, 새로운 인식을 도출하는 시 셋째, 새로운 감동을 주는 시 *시작법(강은교) 첫째, 장식 없는 시를 써라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이다. 셋째, 시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산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시가 처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며 시작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 넷째,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으므로 늘 세상을 감동 어린 눈으로 바라보라. 다섯째, 자유로운 정신nomade을 가질 것, 틀을 깬 상태 여섯째, 낯설게 하기, ‘침묵의 기법’ 일곱째, 약간의 결핍현상이 있어야 한다. *항상 입말에 의지하세요. 가볍고 쉽게 사라지기 때문에 입말이 소중한 것예요. 우리 누구나의 인생처럼…… *위기지학爲己之學 시는 ‘위기지학’이에요. 자기를 닦는 공부지요. 언어는 삶 이상으로 고결할 수 없도 삶 이하로 추악할 수도 없어요. 언어는 밥이며 똥이에요. 예쁜 척하지 마세요. 호들갑스러운 것은 아름답지 않아요. 바깥은 말장난처럼 하되 속은 쓰려야 해요. 나긋나긋한 말 속에 쓰라림을 숨기세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세요. 흔히 시작이라 하는 건 오히려 시와 멀어요. *시인 줄 알고 빠지는 함정들이 몇 가지 있어요. 우선 비유가 많아야 시가 된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시의 비유는 피상적이고 장식적이에요. 다른 함정은 시적인 정서가 따로 있는 줄 아는 거예요. 방금까지 깔깔거리던 사람도 시 쓰라고 하면 금세 그리움, 외로움, 괴로움 같은 폼을 잡아요. 마지막 함정은 시적 화자와 산문적 화자를 혼동하는 거예요. 산문에서는 화자가 떡 버티고 서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반해, 시에서 화자는 모든 재량권을 ‘말’에게 주지요. *시적 글쓰기는 비틀기, 틈새 만들기, 어긋나기예요. 가령 ‘나는 밥을 먹고……’라는 말 뒤에 ‘밥그릇 속에 잠시 앉아 있었다’는 말을 끼워 넣으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겨나지요. *‘왜 그래?’와 ‘괜찮아’(한강의 시 <괜찮아>) * 이유는 나에게 있다. 적을 말살하고 싶은가? 진정 상대를 파멸시키는 것이 좋겠는가? 적은 말살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로 인해 적이 당신 안에서 영원한 것이 되어 버리지는 않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가? ―프리드리히 니체Freidrich Nietzsche, 《서광》 * 인간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 때문에 충격을 입었다. 사람이 사는 터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나르시시즘이 환상을 허물어 뜨렸다. 다음에 다윈은 생물학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사람이 동물 세계와 별개라고 하는 생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어서 심리학이 타격을 가했다. 사람은 우주의 주인이 아니고 생명체의 주인도 아닐 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의 주인도 아니다. ―폴 리쾨르Paoul Ricoeur, 《해석의 갈등》 * 무엇을 얼마나 모르는지 모른다 바라건대 너 자신을 꼼꼼히 살펴보고 알게 되기까지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본질도 가지각색인, 해와 달을 비롯해 하늘과 세계에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공허한 이야기를 지어내지 마라. 너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밝혀낸 다음 네가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마도 우리는 너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까지는 자신이 다른 일들에서 심판관이나 신뢰할 만한 증인의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E. F. Schumacher,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 *돌아보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돌아보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지구 반 바퀴를 뜬눈으로 날아야 하는 철새는 긴 목을 가슴에 비빈다. 얼마나 가야할지를 따지는 것은 몸 밖으로 나간 정신처럼 얼마나 되돌아올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산, 올라갈 땐 괜찮았는데 왼쪽 무릎뼈가 쑤셔 주저앉았다가 한쪽 발로 하산할 때, 나는 내가 지난 세월에 얼마나 날뛰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울지도 못했다. ―김중식, 〈늦은 귀가〉 |
**이글은 박수호 시 창작 방에서 모셔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