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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순 시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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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02:00

사평역에서 / 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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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시    대 : 1980년대

 갈    래 : 서정시, 자유시

 성    격 : 애상적, 감각적

 

임철우의 <사평역> 단편 소설, * 곽재구의 시를 모방 패러디함*   

 줄거리

30대 중반의 농부와 병든 아버지, 교도소에서 출감한 지 얼마 안 되는 중년 사내, 대합실 의자에 웅크린 미친 여자, 시국 사건으로 대학에서 제적당한 청년이 시골 간이역 대합실 안 난로 주위에 모여 있다. 곧 몸집이 큰 중년 여자와 바바리를 입은 처녀, 보따리를 인 아낙네 둘이 들어온다. 중학을 졸업하고 무작정 상경하여 서울에서 작부 생활을 하는 춘심이는 고향에 내려왔다가 다시 서울에 가는 길이고, 중년 사내는 감옥에 같이 있었던 무기수 사상범 허씨의 고향 노모를 찾아 왔다가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는 길이다. 대학생 청년은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고향 부모에게 퇴학당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다. 두 차례 특급 열차가 통과하여 지나가고, 두 시간 후 야간 완행 열차가 도착한다. 대합실에는 미친 여자가 계속 잠든 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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