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暑 지나고
저녁에 가랑비가 내린다.
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젖는다.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한 번 멎었다가 가랑비는
한밤에 또 내린다.
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새로 한 번 젖는다.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
귀뚜라미 무릎도 젖는다.
- 김춘수, 「處暑 처서지나고」
이 시에는 외화성 언어 또는 꾸며쓰기가 없다. 그러나 이 시는 시로서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아름다움은 관찰의 섬세성과 그것을 언어로 가시화하는 묘사의 적절성에 있다.
"멀리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그렇게 "한 번 멎었다가" 내리는 가랑비에 관한 묘사는 시인의 눈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찾아볼 수 없는 세계이다. 그 가랑비에 젖는 "귀뚜라미 무릎" 도 마찬가지다.
시에서의 미적 인식이란 위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일상적이고 기계적인 우리들의 삶 속에 파묻혀 있는 세계를 관찰하고 느끼고 그것을 언어로 드러내는 일이다. 현대시작법 26~27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