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는 것
나는 ‘왕년의 빵모자’를 싫어합니다.
어찌 어찌 쉽게 등단해서 시인이라는 작은 닭 벼슬 하나를 얻었으되, 시는 쓰지 않고 그럴싸한 빵모자만 얹고 다니는 부류들, 그런 반 푼 시인들의 말이란 “왕년에 내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허풍의 추억담이 대부분일 뿐이지요. 자신의 마을 안창에 현재의 튼튼한 주춧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왕년의 피땀으로 얼룩진 새벽정신이었을까요? 찬찬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왕년이란 것은 촌닭 서너 마리만 올라도 금세 허물어질 삭은 횃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놓을 만한 시도 시집도 변변찮아서 자신의 빈약한 문학을 왕년 빵모자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시로 말하고, 소설가는 소설로 말합니다.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다면 어찌 시인이겠습니까? 단지 모자가게의 마네킹에 불과할 뿐이지요.
간혹 쓸 것이 없어서 못쓰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말합니다. 지금 전화하는 곳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것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걸 쓰라고 합니다.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살라합니다. 단언컨대, 좋은 시는 자신의 울타리 문지방 너머에 있지 않습니다. 문지방에 켜켜이 쌓인 식구들의 손때와 그 손대에 가려진 나이테며 옹이를 읽지 못한다면 어찌 문밖 사람들의 애환과 세상의 한숨을 그려낼 수 있겠는지요.
시인이란 모름지기 그때그때 데리고 사는 어떤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시정신이나 시대정신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시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시의 씨앗이 싹을 들이면, 그 시상의 뿌리와 오래도록 놀아야 합니다. 전광석화처럼 치고 들어온 시상을 쓰다듬으며, 오래 데리고 살면, 시는 물렁뼈를 억세게 세우고 비곗덩어리에서 기름을 빼내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버드나무의 상처로 살고, 어느 때는 짜장면 그릇을 덮고 있는 오후 세시의 신문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내 시에 모셔둘 그 무엇들과 십 년 이십 년을 동고동락하는 것이지요. 수많은 동거를 하는 것이지요. 어디 시뿐만 그렇겠습니까? 무릇 예술가는 수도 없이 동거를 일삼는 바람둥이인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가져야 합니다. 백석에겐 백석의 언어가 있고 소월에겐 소월의 가락이 있지요. 나팔꽃이 올해엔 기필코 해바라기꽃을 피울 것이라고 마음 다잡는다고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나팔꽃이란 이름을 갖고 있으므로 잠들어 있는 세상의 미명 위에 굵은 나팔 소리를 낼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다고 그게 이루어질 일입니까. 자신의 시가 나팔 소리로 끽끽거리거나 해바라기로 고개가 꺾이지 않도록 마음 다독여야지요. 나팔꽃은 산골 처마 밑에서도 덩굴을 올리고 도심 한복판 가로등을 타고도 오릅니다. 먹는 이슬이 다르고 내다보는 세상이 다르고 끌어올리는 목마름이 다르므로 남과 자신이 다른 것이지요. 아, 나팔꽃은 오늘에도 있지만 삼십 년 연기 매캐한 부엌 뒷문 밖에도 있었고 남한강 자락이나 지리산 낮은 골짜기에도 있을 것이므로 시 속에 가라앉아 있는 시간과 넓이와 들끓음이 다 다릅니다. 자신의 나팔꽃을 들여다보고 내다보고 훑어보고 째려보아야 하지요. 자신의 눈초리가 박히는 곳에 시의 싹눈이 오롯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지요.
음보音步라는 말이지요. 소리가 걸음마를 뗄 때까지 퇴고를 많이 하십시오. 시가 펜을 놓을 때까지 고치십시오. 시가 나를 풀어줄 때가 되면 시는 드디어 자신의 맨발을 땅에 딛고 사람들 속으로 걸음마를 떼지요. 음보는 시인의 산보가 아니라 시의 걸음마지요.
시상詩想이란 것도 운명이어서, 저 무한천공의 어둠 속에서 억만 겁을 떠돌다가 한 시인의 가슴을 겨누고 들이닥치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찌 빵모자에게 깃들겠는지요? 억만 겁을 떠돌던 한 하나뿐인 생각이라면, 자신의 방에 알전구를 밝혀줄 시인에게 깃들지 않겠는지요? 그러니 좋은 시상 하나가, 떡하니 쳐들어왔다면 어떻게 모셔야 하겠는지요? 그와 눈 딱 감고 살림을 차려야겠습니다. 처음에는 끙끙 데리고 놀다가, 나중에는 시상이란 녀석이 나를 데리고 놀도록 몸과 마음을 내맡겨야지요.
이정록, 시인의 서랍, 한겨레출판, 2012, 208~211.
** 박수호 시창작 교실 (복사골 문학회) 모셔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