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自轉 / 류정환
또각또각,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들
그 닳고 단 뒤꿈치를 가려주려고
저녁이 온다.
쳇바퀴라도 돌려야 하루를 견디겠다고
무심코 내뱉은 검은 말들을 덮어주려고
시나브로 어둠은 쌓여서
저녁은 온다. 흙냄새를 안고 비바람이 건너오듯
지구 저편에서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발소리,
단내 나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뭔가 목마른 것이 있어서
어딘가 닿고 싶은 곳이 있어서
아득한 저쪽을 바라보며
길 위에서 밤낮을 바꾸는 몸의 행렬.
하루를 다 되짚어보기도 전에 밤은 깊고
꿈을 다 꾸기도 전에 날은 다시 밝아서
지상의 꿈은 허구한 날 반 토막,
그 파김치가 된 그리움들을 위로하려고
또각또각 저녁은 온다.
**번번이 동백을 놓치다** - 정진명 엮음 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