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여자
박선희
한때는 저 여자 물오른 나무였다 너른 숲이 앞마당이었고
그늘을 빠져 나온 햇살이 목덜미를 당기곤 했다 어느 날 새
소리 사라지고 지문으로 누운 여자 손끝이 젖어 있다 여자는
흙벽 선로 위에서 바다를 읽는다 한없이 떠밀리던 여자 건반
위로 일어선다 선로의 들숨날숨이 뜨거워진다
계단은 여자 앞에 완강하다 얼기설기 엮인 폐타이어 끝을
잡고 오른다 가끔은 난간을 잡고 쉬기도 하고 사내의 등을 빌
려 걷기도 한다 가파른 발끝에 각이 선다
입술 잠긴 흑백 건반 우당탕탕 파열음을 낸다
오후 4시 다시 시작하고 싶은 시간 숨소리로 일어서는 여자
접힌 길을 편다 요란하게 붉은 울음 쏟아 내며 단숨에 한 옥
타브를 뛰어오른다
잠시 휘청거리던 여자
지문을 밟고 천천히 음계를 내려온다.
심사평
삶의 다양한 경험이 육하된 시
심사를 하면서 맨먼저 떠오른 생각은 시의 소재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얼마나
적절한 소재를 잡아 내는가 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그 소재를 어떠한 방법으로 얼마나 정확히 표현해 내는가 하는 문제라고 여겨진다. 물론 우리 생활 주변에 무엇이나 소재가 될 수 있고, 그 소재를 역량껏 써 내면 그만이라면 끝나는 것이겠지만, 여기에서 짚고 가야 할 것이 "감동" 이라는 표적이요, 그 답안 이란 것이다.
이번에 응모작 중에서 심사위원이 우선 세 분의 시 가운데 3편을 골라 냈고, 그 중에서 당선작을 정했다. 그것은 배은희 님의 <딜리트 키 속으로 도망간 시>와 김득기 님의 <무거운 돌>,그리고 박선희 님의 <건반 위의 여자> 였다 배은희 님은 다섯 단f락으로 時作 과정의 묘미를 은유한 것이 좋게 돋보였으나, 결부에 이르도록 초점을 이루지 못한 점이 지적되었고, 김득기 님은 이미지 선택은 무난하였으나 그 이미지 연결이 보다 더 수월히 구성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고 본다.
당선작을 차지한 박선희 님은 피아노를 치는 손이 관통한 시적 인식은 범상하지가 않다.
평범한 대상에서 일상의 새로움을 발견해 내는 관촬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것은 삶의 다양한 경험이 육하된 결과라고 보아진다.
끝으로 이참에 당선되지 못한 여러분께 권유하고 싶은 말은 외롭게 꾸준히 전력 경주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심사위원 함동선 최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