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 고영민
가을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 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시집 한 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 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접어 읽고,
또다시 반으로 접어 읽는다
**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 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 , 가 되는 변화의 과정을 읽으며 우리는 어떤 통쾌한 울림이 몸을 깜싸는 것을 느낀다. 또 시인은 이 휴지로 밑을 닦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읽는다' 고 한다. 항문이 시를 읽는 다는 것이다. 항문만큼도 깨끗하지 않은 눈으로 시를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휴지로나 쓰일 시 따위는 쓰지 말라는 뜻일까? 이 시의 해학과 세계에 대한 비판적 안목 역시 상상력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를 쓰는 일은 마음속에 상상력 발전소를 차려 가동하는 일이다. 그 발전소에서 당신은 먼저 머리에 입력된 모든 개념적 언어를 해체하라. 정진규의 말처럼 시는 '어머니 사랑' 이라는 말을 버리고 '어머니의 고봉밥' 이라고 말하는데서 시작한다. 개념어는 삶을 일반화해서 딱딱하게 만들지만 구체어는 삶을 말랑말랑하고 생기 있게 만든다.
- 안도현,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