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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의 시작법: 안도현

 

시작법에 관한 우리 시인들의 조언

강은교 시인은 첫째, 장식 없는 시를 쓰라고 한다. 시는 관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구체화되고 형상화되었을 때 시가 될 수 있음으로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한다.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시적 경험이라는 것은 를 넘어선 나의 시를 쓸 때 발현된다는 것,

셋째, 시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시가 처음 다가왔을 때를 돌아보며 시작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넷째,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으므로 늘 세상을 감동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다섯째, 자유로운 정신nomade을 가질 것을 당부한다. 정신의 무정부 상태, 틀을 깬 상태, 즉 완전한 자유에서 예술의 힘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낯설게 하기침묵의 기법의 기법을 익히라고 제안 한다. 상투의 틀에 붙잡히지 말 것, 무엇보다 많이 쓰고 또 그 만큼 많이 지우라고 한다. 끝으로 소유에 대한 시인의 마음가짐이 남달라야 한다고 매우 이색적인 의견을 제출한다. 즉 시의 성취를 맛보려면 약간의 결핍현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사 풍요한 상태에선 시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것,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강은교 < 사랑법 전문

 

  상대방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스스로 자유로워지려는 화자의 자세는 시인의 시론을 반영하는 듯하다. 한국의 연시 중에서 이만한 품격과 절제의 미학을 갖춘 시가 또 있을까? 어설픈 연시는 대체로 그리움과 외로움을 과장해서 전달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눈물이 강을 이루고 울음소리가 하늘 끝에 닿고 아픔이 살을 찢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정말 사랑 앞에서는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최영철 시인은 시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느낌이므로 이런 느낌을 그냥 흘러버리지 말고 마음속으로 되새겨보는 게 시창작의 첫 단계라고 한다. 바람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면 속으로 바람이 시원하다고 한번 중얼거려 보라고, 그 다음 단계는, 바람이 어떻게 시원한지를 느껴보라고 한다. “막혔던 가슴속 응어리를 뚫어 주듯이 시원하다.” “바람에 실려 그리운 사람의 향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다.”처럼,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 모두에게 어떤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하다가 보면 그것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생명을 부여하는 시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글을 남과 다르게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라고 권한다. 그 또한 자신감을 강조한다. 글감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주변에서부터 찾을 것이며, 자신의 부끄럽고 추한 부분,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미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숨김없이 보여주어야 독자는 흥미와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잡념이 많은 것도 괜찮은 일이며, 연속극이나 신문기사 한 줄에도 쉽게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오히려 시를 쓸 자격이 있다고 등을 두드린다. 대상을 향한 열린 시각, 치우침 없는 균형감각, 부분을 보더라도 전체 속에서의 관계를 조망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무엇보다 앞세운다.

 

못 가득 퍼져간 연잎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그것이 못 가득 꽃을 피우려는

연잎의 욕심인 줄 알았습니다

제 자태를 뽐내기 위해

하늘 가득 내리는 햇살 혼자 받아먹고 있는

연잎의 욕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연잎은 위로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래로 안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직 덜 자라 위태위태해 보이는 올챙이 물방개 같은 것들

가만가만 덮어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위로 밖으로 비집고 나오려고 서툰 대가리 내미는 것들

아래로 안으로 꾹꾹 눌러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최영철,- <어머니 연잎> 부분

 

연못을 가득 채운 연잎이 위로 밖으로향하고 있지 않고 아래로 안으로향하고 있다는 발견이 시의 중심내용이다. 그 발견은 대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따스한 모성과 관계된다. 시의 궁극적 수직으로 밖을 향해 상승하는 게 아니다. 수평의 세계관으로 내면을 탐구하는 일이다.

 

장옥관 시인은 시적 발상을 획득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일상생활 속에서 수많은 느낌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붙잡아야 감수성 훈련이 된다.

둘째, 사물들이 항복을 할 때까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셋째, 어린아이의 눈처럼 사물과 현상을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상상력이 커진다. 나의 관점을 버리고 대상의 눈으로 나를 보라는 것.

넷째, 자신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섯째, 가까운 곳에서 시를 찾는 눈이다.

 

길에도 등뼈가 있었구나

 

차도로만 다닐 때는 몰랐던

길의 등뼈

 

인도 한가운데 우둘투둘 뼈마디

샛노랗게 뻗어 있다

 

등뼈를 밟고

저기 저 사람 더듬더듬 걸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생고무 혓바닥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남김없이 일일이 다 핥아야 한다

 

비칠,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몸으로 핥아야 할 시린 뼈마디

내 등짝에도 숨어 있다

-장옥관,- <걷는다는 것> 전문

 

실제로 장옥관 시인이 시로 형상화하는 소재는 대단히 특별한 것들이 아니다. 이를테면 벚꽃 아래로 지나가는 개, 자신이 누는 오줌, 포도를 껍질째 먹는 일, 아스팔트에서 본 죽은 새, 옛 애인에게서 걸려온 보험 들어달라는 전화.... , 그러나 이것들이 시인의 눈에 포착되면 경이로운 존재의 실감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빛을 뿜는다. 시인은 길을 걷다가 장애인을 인도하는 노란 안내 선을 보며 놀랍게도 밑창으로 하나하나 핥으며 걷는 길의 등뼈를 발견한다. 신발의 밑바닥이 길을 핥는다는 통찰을 통해 시적 발상이 어떻게 발화하는지 보여주는 시다.

 

** 안도현의 시작법  263~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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