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의자 / 김기택

by 들국화 posted Sep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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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의자 / 김기택

 

 

묵묵히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늦은 저녁, 의자는 내게 늙은 잔등을 내민다.

나는 곤한 다리와 무거운 엉덩이를

털썩, 그 위에 주저앉힌다.

의자의 관절마다 나직한 비명이

삐걱거리며 새어나온다.

잠시 후 가는 다리에 근육과 심줄이 돋고

의자는 간신히 평온해진다.

 

여러번 넘어졌지만

한번도 누워본 적이 없는 의자여,

어쩌다 넘어지면,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허공에 다리를 쳐들고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는 의자여,

걸을 줄도 모르면서 너는

고집스럽게 네 발로 서고 싶어하는구나.

달릴 줄도 모르면서 너는

주인을 태우고 싶어하는구나.

오늘은 네 위에 앉는 것이 불안하다.

내 엉덩이 밑에서 떨고 있는 너의 등뼈가

몹시 힘겹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