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촬영 후기
호박꽃 하면, 시냇가에 돌담 타는 가시투성인 호박넝쿨을 떠올리고 이 넝쿨은 찔레나무든, 잡초든, 돌 틈, 나무 어떤 것이든 다 붙잡아 몸을 감으며 뱀처럼 으스스하게 뻗어 가는 억센 열매식물이지만, 밤이면 달빛처럼 널찍한 잎 사이로 고개를 쑥 내밀고 환하게 웃는 농촌의 대표적인 소박한 꽃이기도 하다. 개구쟁이들은 이 꽃을 마구 꺾어 반딧불 몇 마리를 잡아 꽃 속에 가두고 풀잎으로 끝을 오므려 묶어, 그것을 거꾸로 들면 영락없는 초롱불이 되었고, 이 꽃 안에 갇힌 반디 벌레들은 뻔쩍뻔쩍 불을 밝히며 나 죽는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못들은 채, 그것을 들고 이슬에 옷 젖는 줄도 모르고 한밤을 같이 쏘다니며 노는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도 인기 있는 꽃이었다.
이 추억의 호박꽃이 매년 피고 지는 동안 나는 어른이 되어 늙고 볼품없어진 지금 내 모습을 자칭 호박꽃에 비유하며 “나는 호박꽃이다.”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왜? 언제부터, 호박꽃이 못생긴 꽃의 대명사가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들었던 대로 남이 말했던 대로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하며 살았는데, 이 호박꽃이 우리 집 뒷마당 담장 밑에 넝쿨을 펴놓고 개화가 한창인 것을 보았다.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호박밭의 좋은 배경을 찾아다니며 생각하기를, 얼마나 못생겼으면 못난 꽃의 대표가 되었을까? 그래도 꽃인데 예쁜 모습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얼른 찍어서 못난이 꼬리표를 떼어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예쁘게 웃어야 한다, 그래야 못난이 꽃을 면하게 된단다. 하고 웃어달라고 당부하고 호박밭으로 뻔질나게 왔다 갔다 하였는데, 갈 때마다 보여준다는 것이 지는 모습, 고개 숙인 모양이 마치 한여름에 강아지 혓바닥 내밀듯 늘어진 꼴만 보일 뿐 예쁜 모양은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물론 개화시간도 모르고 내 편리한 시간에만 갔던 내잘 못도 있었지만.
그리하여 피기 직전의 꽃망울 두 개에 눈도장을 찍어놓고 개화시간을 맞추게 되는데, 밤사이 피어버리면 어찌하나, 나의 조급함이 자정인 것도 잊은 채 밭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이 웃지 못할 내 행동을 생각해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야밤에 그것도 자정에 사진기 플래시를 번쩍이며 호박꽃을 찍고 있었으니, 낮과는 달리 누군가 내려다보는 것 같아 호박 따다가 들킨 사람모양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얼른 집으로 와서 혼자 웃으며 중얼중얼 “미쳤지,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치매환자가 때도 모르고 어디론가 다니는 것과 다를 바 무엇인가? 그냥 혼자 한 일인데 뭣 때문에 심장은 뛰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어찌했던 이렇게 유난을 떤 결과로 개화 시간은 짐작하게 되었다.
호박꽃은 첫 새벽부터 피기 시작하며 아침 9시 이전이 가장 싱그럽고 예쁠 것으로 예측하여, 9시보다는 조금 늦은 시간인 10시쯤에 내려갔는데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리하여 서둘러 옆으로, 앞으로, 위아래로 배터리를 바꿔가면서 원 없이 호박꽃을 촬영하게 되었다.
이날에 만난 수꽃은 정열적인 것은 기본이고 분위기 또한 만점이었다. 잎에 살짝 가려져 발그레한 모습은 활짝 핀 벚나무 아래 가로등, 은은한 봄의 운치 그것이었고, 색깔 또한 어느 꽃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꽃잎은 양옆을 오글오글 말아 별 모양으로 멋을 부리고, 행여 만날 신부를 위해 금빛 예복을 차려입고 푸른 넥타이, 함박웃음 큰 나팔을 불며 꼿꼿이 서 있었다. 잠시 후에 생을 마감할지라도 당당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누가 이 꽃을 못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하찮게 여겼던 호박꽃이 이처럼 순수하고 개성 있고 색깔 또한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몰랐다. 촬영한다고 호박넝쿨 사이를 오가며 앉았다 섰다 하다 보니 다리에 풀 독 옮아 가려워 죽기 살기로 긁었으며, 또한 지나가던 행인들의 이상한 눈초리도 신경 쓰인 일이었지만 나름대로 호박꽃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 외의 나만의 진실함과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다.
또한, 못 난 꽃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짧은 생을 사는 수꽃은 암꽃을 만나기 위해 그 많은 수꽃이 피었다 지는 희생이 나의 마음을 찡하게 했으며. 한 송이 꽃이 열매로 결실을 보기까지는, 세상 모든 것들이 다 그러하듯, 하찮다 하던 호박꽃 역시 보이지 않는 고통과 많은 희생이 있었던 후에 호박이란 열매를 보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단, 아쉬움이 이었다면 만개한 암꽃을 만나지 못한 점이다. 간신이 아기 호박을 달고 나타난 어린 한 송이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꽃을 못 보고 떨어져 버렸고 며칠 후 또 한 송이가 개화를 했으나, 때를 못 맞혀 이미 피었다 지는 중에 만나 만족한 모습을 못 봤다. 속상해 꼬부라진 두 잎 중 한 잎을 거둬 올리고 촬영을 하였으나 자연미가 없어 예쁘지 않았다. 그리하여 또 피려니 하고 기다려보았지만, 유난이 길고 더웠던 올여름 무더위 때문에 달렸던 잎도 마르고 암꽃은 물론 수꽃도 점점 보기 어려웠으며 넝쿨도 부실하여 호박 한 덩이 보지 못하고 가을을 맞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호박꽃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고 며칠간의 열었던 촬영 이야기는 여기서 막을 내리려 한다.
** 2010년 8월 17일 (약 7일간 호박꽃을 촬영하고)